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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하여

정영득 2021-09-0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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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하여 

또 깎여 있다. 벌써 몇 차례인가. 고속도로 공사는 끝이 없는 듯하다. 여기 끝나면 저기, 거기 끝나면 또 다른 저기에서 공사가 이어진다. 도로 일부 구간을 새로 포장하기 위해, 멀쩡해 보이는 도로 표면을 건설회사가 야무지게 깎아 놓았다. 지날 때마다 타이어가 불편해한다. 자동차 핸들도 덩달아 떨고 있다. 그만큼 차들이 속도를 못 내고 가니 구간 정체로 이어진다. 어서 이 공사가 끝나기를…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는 걸 간과했다.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니 그간 비 온 날이 없었던 걸까. 비가 퍼붓는 날에, 아니, 조금만 와도, 그 거친 표면은 타이어 수막 현상을 덜어주는 버팀목으로 작용했다.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던 장애물이 어느 날 갑자기 듬직한 안전 요원의 모습으로 등장한 격이었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도로가 확장되고 보수 유지되기 위해서는 작업이 늘 필요할 것이다. 고마운 공사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일반도로 좌회전 구간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트럭 한 대가 2차선을 가더니 천천히 좌회전 레인으로 들어섰다.
“아예, 처음부터 좌회전 차선에 들어왔어야지. 지금 돌면 어떡하지?” 
나 혼자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거리까지는 충분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 오르막길이기에, 좌회전 차선에 미리 들어서면 뒤 차량이 계속 밀릴 것을 염려한 운전 솜씨였을 것이다. 내가 좋게 해석해주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런 때의 새치기는 새치기가 아닐 것이다.

오해에 관한 일화 중에는 영시, <초원의 빛> 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이 시를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시로만 여기고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예 좋아해서는 안 되는 시로 치부했었다.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이었다. 워즈워드가 이 시를 발표한 때가 30 대 후반이라고 한다. 따라서 오직 청춘 시기에만 애송될 만한 시라고 하기에도 다소 애매한 점이 있을 것이다. 오히려 세월이 농익어가며 더 의미를 갖게 되는 시일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워즈워드 할아버지 운운하며 영시를 좋아하더니 마침내 영문과 교수로 많은 시간을 보낸 친구 생각이 난다. 요새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분당 탄천 덕분이었다.

분당 탄천 일대를 담은 영상물을 지인이 보내왔다. 그 지역은 우리가 이민 오기 직전까지 살던 곳이다.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영상을 보며, 어린 아들 둘과 자전거 타던 탄천 주변 자전거 전용 도로며, 송사리 잡던 개울가며, 공놀이 잔디밭 등 즐거웠던 추억과 만날 수 있었다. 영상물 배경 음악이 문주란의 <초우>였다. 으레 패티김 노래일 것이라고 여겼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다시한번 선입견이 작동했던 게다. 그옛날의 동명 영화도 생각나면서 문득 <초원의 빛>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1920년대 말 미국 캔사스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청소년 간의 풋풋한 방황, 가족 간의 불안한 애증, 경제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겪게 되는 삶의 질곡한 현장 등이 잘 묘사된 영화다. 지금 봐도 감동을 준다. 경제 대공황보다 더 힘든 지구촌 패닉 시대를 현재 살고 있지 않은가. 워즈워드의 시는 영화에서 주제가 되어 빛난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60년이 지나고 나서야 내 손이 그 절정에 닿았다.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고 다시 돌듯이, 새 시계가 돈다. 

모든 일에는 다중성이 내재돼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양면성을 포함해서 말이다. 글을 쓰는 것만 해도 그렇다. 글 쓰는 즐거움 이면에, 제대로 된 글 하나 끝마칠 때까지 계속 퇴고해야 하는 고행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나 성별 또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만나게 되는 생각이 종종 한 쪽으로 치우칠 때가 있다. 나는 아직도 그 편향의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언제나 스스로 형평을 유지하려고 애쓸 뿐이다. 생각을 보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초원의 빛과 꽃의 화려함을 기억하며 꿈꾸며......

2021년 9월


한때는 그렇게도 밝았던 광채가
이제 영원히 사라진다 해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을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우리 슬퍼하기보다, 차라리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본원적인 공감 속에서;
인간의 고통에서 솟아 나오는
마음의 위안을 주는 생각과
죽음 너머를 보는 믿음에서,
사색의 마음을 가져오는 세월 속에서.

윌리엄 워즈워드
<초원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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