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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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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

전철희 2022-08-05 0

소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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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우다다다 소낙비가 내린다. 일기예보는 여전히 맑음. 국지성 소나기, 예측이 어렵다.


최근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은 83.3세, 건강수명은 73.1세라는 통계 자료를 봤다. 수치만 놓고 본다면 한국인은 얼추 10년 정도는 병을 앓다 죽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병이라면 몰라도, 누워 지내야 할 병이라면 심각하다. 더 나아가서 산소 호흡기 같은 의료기기에 의존해서 살아야 할 지경이면 생각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사전 의료 연명 의향서’에 관심이 간다. 세부적인 내용은 몰라도 존엄하게 살다 가고 싶은 사람이, 산소 호흡기, 혈액 투석기, 영양 주입기 같은 생명 연장 장치를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죽겠다는 의향을 미리 명시해 두는 문서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18년간 내 품속에서 하루 종일 꼼지락거리다 간 반려견 ‘바우’ 생각이 난다. 떠나기 2년 전부터 노환으로 고생하다 자기 생일 며칠을 앞두고 제 발로 갔다. 마지막 1년 정도는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사정을 아는 주위 지인들이 내 이기심으로 녀석을 더 괴롭게 한다며 놓아주라고 권했다.


맞다, 내 이기심. 수의사에게 연락해서 예약한 후 며칠 동안 잠을 설친다. 당일 새벽에 녀석이 눈을 떠서 나를 쳐다본다, 목마르다는 신호다. 일으켜 세워 몸통을 잡고 서게 했더니 제법 다리에 힘을 주고 서서 찹찹 물을 맛있게 마신다.


좀 좋아진 것 같다. 서둘러 동물병원에 전화한다. 시골 작은 병원이라 의사 선생님이 직접 전화 받는다. 사정을 말하고 예약을 취소한다. 사실 예약 취소가 주 목적이 아니라 녀석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기분 나쁜 약속을 빨리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졸린 목소리의 local 의사 선생님이 미안해하는 나를 오히려 위로한다. 충분히 이해한다고. 새벽 3시다.


내가 병원에 누워 있다면 어떨까? 남아 있는 가족들의 심경이 복잡해질 것이다. 기약 없이 간호해야 하는 어려움과 떠나보내기로 결심하는 것의 어려움. 이 두 가지 어려운 짐을 남기기 싫다.


바우의 그 당시 심정은 어땠을까 그래도 살고 싶었을까? 나는 모른다. 침대에 내가 눕기 전까지는 그저 가정일 뿐이다. 건강한 몸일 때의 내 생각과 절박한 상황에 놓인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애처로워하면서 녀석과 보낸 2년간의 기억은 지금 내게 있어서는 아픔이다. 그 이전 16년간 들로 산으로 같이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은 좋은 추억이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아픔을 남겨 주기는 싫다. 꼬장꼬장했던 성격으로 나를 알고 있던 지인들에게 인사불성으로 살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자존심 상한다. 


지금은…


구글로 자료를 search하고 곧 정리된 정보를 얻고 실행에 옮길 것이다. 기대수명과 건강 수명이 일치하는 행운이 내게 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글을 마치고 창밖을 보니 소나기는 그쳤지만, 이웃집 높다란 나무 끝부분에 달려 있는 이파리의 색깔이 약간 누렇다. 벌써 가을이 시작됐나? 술 한잔 생각나지만 참는다. 내 할 바를 다하고 나서 기도하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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