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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수진의 영화 이야기

아귀

수진 2022-02-17 0

미국과 캐나다 원주민들 사이에는 '웬디고' 라는 이름의 악령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웬디고에 홀리거나 빙의된 사람은 극단적인 변화를 거친다. 


웬디고의 희생자는 악령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허기와 욕심으로 가득 차게 되며, 외모는 산짐승처럼 흉하게 변하고 몸은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진다. 추악한 괴물이 된 웬디고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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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한 식욕으로 희생자의 살을 뜯어먹지만 먹은 만큼 배가 차는 대신 덩치가 커져 영원히 그 허기를 채울 수 없다. 


그들은 끝없이 먹어치울 인간을 찾아 헤메며 웬디고에게 상처입거나 죽은 사람들 역시 같은 괴물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북쪽 땅의 춥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인간은 한정된 자원을 갖고 생존해야 했다. 


그 중에는 욕심을 참지 못하고 동료의 물건을 훔치거나 허기에 미쳐 식인을 하게 된 사람들 또한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런 이들에 대한 경각심을 세우기 위해 구전되었을 이야기인 웬디고의 전설은 대중에게 생소한 미 대륙 원주민들의 문화 치고는 북미 문화권 내에서 제법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차례 영화 등의 매체에서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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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악마의 등뼈' 등 기괴한 괴물들과 기묘한 분위기의 영화로 많은 팬을 갖고 있는 영화인 기예르모 델 토로가 투자 및 제작을 한 것으로 화제가 된 스콧 쿠퍼 감독의 공포영화 '앤틀러스' 역시 웬디고 전설을 소재로 다룬다. 


낙후해버린 오레곤 주 어딘가의 마을, 불우한 가정사를 피해 도시로 떠났던 줄리아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보안관이 된 동생의 집에서 살며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게 된다. 


몇년 전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루카스. 가족을 돌봐야 하는 아버지는 버려진 공장에서 마약을 만들다 무언가에 습격당한 뒤 방 안에 갇힌 채 루카스가 가져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있다.


의지할 사람 한명 없이 동생과 아버지 두 사람을 부양해야 하는 힘든 삶으로 인해 루카스는 점점 사회에서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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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같이 불우한 가정사로 고통받는 루카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줄리아는 루카스를 도우려 하고, 선의에서 비롯된 그녀의 손길이 자물쇠를 열어 뭔가 끔찍한 것을 풀어놓게 된다.


'앤틀러스' 는 분위기를 풀어줄 장면 하나 없이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주인공들, 특히 루카스 역을 맡은 제레미 T. 토마스의 연기력은 훌륭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때까지도 우리는 주인공들의 배경과 성격 등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적당히 우울하고 적당히 어두운 과거를 가진 공포영화 캐릭터의 아키타입으로서 머무른다. 높낮이 없는 스토리와 깊이 없는 캐릭터가 맞물리며 영화는 때때로 지루한 느낌을 준다.


반면 그렇게 스토리와 캐릭터를 희생해 만들어낸 영상은 훌륭하기 그지없다. 오레곤 산골 마을은 어둡지만 흐릿하지는 않다. 괴물은 백주대낮 맑은 하늘 아래 거늴지 않지만 모습을 드러낼 때는 폭발적이고 장엄한 자태를 자랑한다. 


숲과 폐건물의 그늘 속에 괴물이 몸을 숨길 동에는, 인적 없는 거리와 짐승같은 검은 숲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마치 그림같이 화면을 채우는 것이다. 


빛 바랜 채 죽어가는 오레곤의 풍경에는 그렇게 야성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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