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한국 남자가 그랬듯이 내 남편도 평생 부엌살림을 모르고 살았다. 하다못해 냉장고에 있는 음식도 꺼내 먹을 줄 몰랐다. 내가 제사 준비로 바쁘게 동동거려도 누워서 낮잠을 잘망정 파 한 뿌리 다듬어 줄 줄 몰랐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정네들이 해 주는 밤 치는 일마저 핑계를 대며 피했다.
자신은 직장에 나가 생활비를 벌어오니 육아와 시부모님 수발을 포함한 모든 집안일은 당연히 아내가 해야 하는 일로 여긴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은 아무리 외국물을 먹어도 변하지 않았다.
일 년 내내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게 집안일이다. 나는 항상 피로에 젖어 살았다. 물론 밖에 나가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러기에 회사에서 종일 고생한 남편에게 밥상을 정성스럽게 차려다 바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육아와 집안일도 직장 일 못지않게 힘들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빛이 나지 않는 일,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모양새였다. 나는 그런 점이 서운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내 아들은 직장 일은 물론, 집안일도 잘하고 아내를 살뜰히 살펴주는 멋진 남자로 자라기를 바랐다.
오랜 시간 우리와 떨어져 미국 생활을 한 아들은 역시 다른 나라에서 온 여자와 결혼해서 영어만 쓰고 살 만큼 거의 미국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들 내외와 한 지붕 아래 살게 되면서 아들은 여자일 남자일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아내의 힘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며 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육아와 크고 작은 집안일은 물론 화장실 청소 등 잡다한 일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나서서 했다.
아들은 재택근무를 하기에 며느리보다 시간을 좀 더 융통성 있게 쓸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도 하고 원래 성격이 자상해서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며느리가 직장에 가고 나면 아들은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그러고 나면 들어 오자마자 달그락거리며 서둘러 설거지하고 청소기를 돌려 아이들이 드나들며 어지럽힌 거실을 청소했다. 아침은 시리얼이나 먹던 음식으로 대충 때우고 서둘러 일을 시작했다. 어떤 음식을 언제 어떻게 먹든 일절 불평하지 않았다. 대부분 부엌에 서서 후다닥 들이키듯이 먹었다.
두 손자가 연년생으로 태어났을 적에도 아들이 밤잠도 안 자고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는 일까지 하며 제 아내를 편하게 해 주었다. 그때는 며느리가 집에서 육아에만 전념하던 때였음에도 그랬다. 모든 게 제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아들은 항상 바쁘게 뛰어다녔다. 한 집안의 가장이니까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귀하게 키운 아들이 마치 상머슴처럼 사는 듯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나라에서 남자로 가정을 유지하며 산다는 건 참으로 고달픈 일이다. 그런 아들이 몹시 안쓰러웠다. 남자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지 했는데, 막상 내 아들이 그토록 고달프게 사는 걸 보니 생각이 달랐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그렇게 헌신적으로 사는 아들을 볼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것이 인생이지 여기며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어 자식 낳아 기르고 살아가는데 누구 몫이냐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애써 쓰린 가슴을 다독였다.
입장에 따라 바뀌는 내 마음. 남편이 평생 몸 사리고 살아서 불만이 많았는데 막상 아들이 제 가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고생하니까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이토록 애처로울 줄 어찌 알았나. 아내의 입장으로 느꼈던 마음과 엄마의 입장으로 느끼는 마음이 이렇게 극으로 갈리니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기 짝이 없다.
요즘은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아내가 해 주는 밥을 먹는다는 말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아들은 강조해서 말했다. 똑같이 일하는데 아내를 부려 먹는 나쁜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누가 식사 준비를 하냐고 물었더니 남자가 다 한다고 대답했다. 여자가 경제활동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설거지와 남자 손이 필요한 집안일뿐만이 아니라 아내와 가족이 먹을 음식까지 모두 남자가 다 한다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세상이 우리 때와는 완전히 바뀌었으니 나도 생각을 달리하려고 노력한다. 남자가 회사 일과 집안일, 부엌일까지 도맡아 하는 세상이 오리라고 감히 상상이나 해보았나. 어쨌든 힘든 내색 하지 않고 제 아버지와는 달리 사는 아들 모습이 대견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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