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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나부코(Nabucco)> 공연실황을 보고

손영호 2024-02-02 0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 중인 요즈음 클래식 라디오방송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주더군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삽입된 유명한 합창인 건 아는데 정작 이 오페라를 접할 기회가 없던 중, 이번에 Cineplex에서 1월 6일 단 한 차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 줄여서 Met)의 공연을 HD로 실황중계를 한다기에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1. 베르디와 <나부코> 작곡의 배경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이탈리아 낭만파 오페라의 효시인 조아키노 로시니를 시작으로 가에타노 도니제티와 빈첸초 벨리니의 뒤를 이어 오페라의 극적 예술성을 극대화한 거장 작곡가입니다. 

   오페라 <나부코>를 작곡할 당시 베르디는 결혼한지 4년 만인 1840년에 동갑내기인 27살 아내와 자녀 둘을 모두 병으로 잃어 일생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소프라노 가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Giuseppina Strepponi, 1815~1897)의 도움과 조언으로 위기를 극복하여 드디어 1842년 3월9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주세피나가 아비가엘레 역으로 출연한 첫 공연이 성공함으로써 그의 최고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주세피나와 동거하다가 1859년 8월 말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으나 그녀는 1897년 11월14일에 폐렴으로 사망했고, 고독한 삶을 살던 베르디는 1901년 1월21일 밀라노의 한 호텔에서 의식을 잃고 침대에 쓰러져 있는 것을 하인이 발견한 후 엿새 만인 27일에 87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모차르트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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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반니 볼디니가 그린 주세페 베르디의 초상화(1886). <출처: 위키피디아>


2. <나부코>의 줄거리

   <나부코(Nabucco)>는 4막의 오페라로, 나부코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이탈리어식으로 축약한 말입니다.

   바빌로니아(아시리아, 지금의 이라크)의 왕인 '나부코'는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을 함락하는데, 그 선봉에 선 장수가 큰딸인 여전사 '아비가일레'입니다. 아비가일레는 적장 '이스마엘레'를 흠모하지만 그는 이미 나부코의 작은딸 '페네나'와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아비가일레는 자신의 생모가 왕비가 아닌 노예였으며 더불어 자신도 노예의 신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왕위가 페네나에게 계승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분개해 아버지 나부코에게 반역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나부코 왕은 유대인 포로들에게 너희들의 신은 여호와가 아니라 나부코 자기를 신으로 모시라고 명합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서 그를 쓰러뜨리고, 그 사이 아비가일레는 아버지 나부코 대신 왕위에 오르고 눈엣가시였던 페네나를 사형에 처하려고 합니다. 감옥에 갇힌 나부코는 유대의 신 여호와를 부르짖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이때 여호와의 가호로 정상인이 되어 다시 왕좌로 돌아온 나부코는 페네나와 유대인들을 구하고 바빌로니아 바알신의 신상(神像)을 파괴하라고 명합니다. 

   나부코는 위대한 유대의 신을 찬양하고, 한편 자신의 종말이 왔음을 예감하고 독약을 마신 아비가일레는 페네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숨을 거두면서 이야기는 마무리 됩니다.


3. 주요 배역

   이 오페라에는 5명의 주요 배역이 있는데요, Met공연에서는 나부코 왕 역은 조지 가드니체(바리톤, 조지아 출신), 예루살렘 대제사장 자카리아 역은 드미트리 벨로스셀스키이(베이스, 우크라이나)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나부코의 큰딸이자 아버지의 왕위를 강탈하려는 여전사 아비가일레 역에는 류드밀라 모나스티르스카(스핀토 소프라노, 우크라이나)가 맡아 열연을 펼칩니다. 여성임에도 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넓은 음역대의 파워풀한 성량과 힘차고 높게 울리는 고음에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음색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나부코 왕보다 감정표현 등에 있어서 성악적으로나 연기면에서 압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무대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부르다보니 노래가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전문가의 견해가 있긴 했지만…

   이와 같이 리리코(lirico)의 밝은 음색을 가지면서도,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로 올라갈 수 있는 소프라노를 '스핀토 소프라노'라고 하며, '스핀토'는 '찌르다' '밀어붙이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입니다. 반면, 작은딸 페네나 공주 역에는 마리아 바르코바(메조 소프라노, 러시아)가 맡아 준수한 연기를 펼칩니다.

   가장 관심을 끈 배역은 예루살렘 왕의 조카이자 두 딸의 구애를 받는 이스마엘레 역의 백석종(스핀토 테너, 한국)이었습니다. 그는 세계적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처럼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한 경우로, 전주예고에서 성악 공부를 시작한 뒤 뉴욕 맨해튼 음대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어느 날 하루 서너 시간씩 연습하던 중 고음이 터지는 '득음(得音)'을 하여 테너로 전향했다고 합니다. 

   백석종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것은 테너 전향 후 참가한 LA 로렌 자카리 국제 성악 콩쿨에서의 우승이었습니다. 테너 이용훈 등이 우승한 이 대회를 계기로 그는 영국 로열 오페라단의 주역으로 발탁되는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뉴욕 Met의 2023~2024 시즌에 전격적으로 캐스팅되었습니다. 2021~2022 시즌에서 활약했던 테너 이용훈에 이은 쾌거라 자랑스럽고 신선해 보였습니다. 


4. 인상적인 곡들

   바빌로니아에서 억압과 노역에 시달리며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히브리인들은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잘 알려져 있는 "가라, 내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를 노래합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견해입니다만 다시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데요.

   그리고 공연시작과 동시에 연주된 서곡(Overture)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등 극중의 멜로디들을 잘 조합하여 작품에 몰입하기 전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통로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지휘는 밀라노 출신 다니엘레 칼레가리가 맡았습니다


b686bfe59a70f292451216d53bca7c6c_1706900719_7803.jpg ▲ 돌계단에서 <나부코>의 하일라이트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부르는 장면. <실황캡처사진>


5. 맺는말

   이번 뉴욕 Met의 <나부코>를 보면서 예루살렘의 솔로몬 신전, 나부코 왕의 궁전, 그리고 노예들이 합창할 때 세팅 배경의 돌계단 등 웅장한 무대연출과 회전무대를 이용한 무대전환은 세계적인 Met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고, 작품의 감동을 진하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중간 휴게시간에 백석종 테너를 비롯한 주요 출연자들의 인터뷰가 이루어진 것도 좋은 연출이었습니다. 참고로 3월에 베르디의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과 샤를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등이 예정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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