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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자와 나

김채형 2025-09-05 0

대학 졸업반인 외손자가 아홉 살에서 열 살 무렵이었다. 녀석은 틈만 나면 내게 함께 놀기를 청했다.

헤이, 할머니! 캔 유 플레이 수퍼 마리오 갤럭시 위드 미?

싫다, 난 바쁘다.

오, 플리스, 플리스!

아홉 살짜리 외손자 때문에 우리 집은 언제나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사용했다. 손자가 영어로 묻고 내가 한국말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다섯 살에 캐나다에 온 외손자가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리고 듣기만 하기 때문이었다. 

내 입장으로 보면 서툰 영어를 향상시킬 겸 아예 영어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녀석이 언젠가 한국말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고 공부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 나는 한국말 쓰기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듣기만이라도 가능하면 말을 배우기는 훨씬 수월하리라 싶었다.

녀석은 심심한 걸 참지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겨우 숙제를 마치고 나면 누구하고든 놀지 못해 안달을 내곤 했다. 요즘 아이들이란 예전의 우리들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놀아주는 것 또한 예삿일이 아니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놀이도 하고 대화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자가 좋아하는 놀이와 장난감, 그리고 인기 있는 만화책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녀석은 비디오 게임인 <수퍼 마리오 갤럭시>와 <마리오 부라더스> 외에도 틈이 나면 컴퓨터를 켜고 유투브를 통해 '브릭 쇼'를 보았다. 또한 여러 종류의 책 중, <빅 네이트>나 <윔피 키즈> 시리즈 정도는 기본이었다. 또한 레고 세트도 여러 종류를 가지고 놀았다. 적어도 이 정도는 알아야 녀석의 상대가 될 수 있었다. 

마지못해서 부엌일을 중단하고 녀석을 위해 소파에 나란히 앉아 리모컨을 잡았다. 나는 열심히 마리오가 가는 대로 따라가서 적으로부터 보호를 하기도 하고 적을 미리 막아서 마리오가 전진하기 편하게 길을 뚫어 주기도 했다. 마리오는 손자가 조종하는 대로 깡충깡충 뛰면서 별도 먹고 동전도 주워 먹고 힘을 얻어서 공주를 구하러 갔다. 

옛말에 '외손자를 돌보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외손자에게 아무리 정성을 쏟아 보았자 말짱 헛일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외손자와 친손자를 구별하는 마음이 어디 있는가 싶었다. 나는 녀석을 볼 때마다 나의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나의 외할머니 또한 외손녀인 내게 몇 년 동안 온갖 정성을 다 쏟아 주셨다. 

내가 네다섯 살이었던 시절, 나는 아무도 못 말리는 울보였다. 툭하면 울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들었고, 어른들이 내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온종일 울어댔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외할머니께서는 그런 나를 달래기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간식을 만들어 주셨다. 언제나 누룽지는 떨어지지 않았고 여름엔 삶은 감자와 호박전 그리고 미숫가루, 겨울엔 삶은 고구마와 빈대떡, 가을과 겨울엔 연시와 식혜 등, 하루 종일 일에서 헤어나질 못하셨다. 그 외에도 직접 절구질을 해서 쑥개떡에서 인절미나 시루떡까지 만들어 주셨으니, 그 힘들고 고된 노동을 어찌 다 감당하셨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내 장난감은 주로 자연이었다. 봄에는 뒷산에서 숨바꼭질하거나 진달래꽃을 꺾어 수술 싸움을 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즐겼으며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고 얼음판을 찾아 다니며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연날리기, 팽이치기, 썰매 타기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남자아이들의 놀이를 쫓아서 하는 걸 좋아했으니, 여자아이치고는 좀 유난스러웠던 것 같다.

나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흠뻑 받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했다. 친가로 돌아온 뒤로 아주 드물게 외가를 찾게 되었다. 그래도 기회가 전혀 없지는 않았는데, 너무 무심하게 지나쳐버렸다는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회한의 마음이 들 때마다 이러니 외손주에게 잘해 주어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어서야 나는 외할머니께서 내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 또한 외손자에게 커서 꼭 갚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녀석이 성장한 뒤의 훗날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는 그저 상상에 그칠 뿐이니까. 외손자가 나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속에 포함해 주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나는 늘 외손자를 위해서 기도해 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사춘기 때는 이 시기를 순조롭게 넘기도록 성경을 구약 일 장 일 절부터 신약 요한묵시록 마지막 절까지 한 자 한 자 타이핑하며 기도했다. 외손자는 내 기도대로 사춘기를 순조롭게 넘기고 바르게 잘 컸다. 내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이제는 끝까지 하느님을 섬기며 잘 살아서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착하고 예쁜 여자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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