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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하나님 뜻을 분별하는 법

정재천 2021-03-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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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에 속하는 책이지만 실제로 요나서는 선지서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심판과 예언의 선포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 아니라 선지자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나서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과 예언의 내용은 단 한 마디 1장 2절과 3장2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씀 한 절 뿐입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요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애하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요나가 어떻게 이렇게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선지자 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유일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뿐 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분별”하는 도구가 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지 않습니다.그 런데 요나는 다른 선지자와 달리 하나님의 말씀 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잘 못 알고 있는 것처럼 “마음의 평안,”이나 “일어나는 상황”을 또한 하나님의 뜻으로 삼았습니다. 얼마나 자주 성도님들이 “목사님, 마음의 평안을 얻었어요”라며 그것을 하나님의 응답이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런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래서 요나를 통해 배워야합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 (말씀)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바로 다음절인 3절에서 하나님을 피해 도망을 치기 위해 항구에 갔는데 “마침 (니느웨의 정반대인)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라며 그 배에 오릅니다. 요나는 마음에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뜻이라고 믿었을 겁니다. 그가 배에서 잠이 들 수 있었던 것도 마음의 평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기복신앙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이 우리의 상황이나 마음의 평안 같은 감정적인 것은 시시각각 수시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도 보세요, 요나가 박넝쿨로 크게 기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순간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그 넝쿨이 시들고 나서는 금방 불평하는 요나를 보세요. 그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하나님의 뜻으로 삼고 있는지 어떻게 그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한번 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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