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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찾아온 인연

백경자 2023-11-30 0

1983년 우리가 노스 욕으로 이사 온 일년후에 신디라는 3 살 된 치와와  강아지 한 마리가 양녀로 들어왔다. 어느 날 성당을 통해서 오랜 세월 친분을 쌓고 우리와  인연을 맺은 지인으로 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오랬 만에 인사차 하는 전화에 자기 집에 멕시칸 종의 강아지가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우리에게 2년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우리는 이유를 물을 겨울도 없이 그 집으로 달려가서 정신적으로 불안해 하는 어린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이 아파트를 방문하였을 때  이 개는 사람을 피하고 어디론 가 숨어 버렸다.그리고 후들후들 떠는 게 첫 증상이었다. 사람 같으면 몹시 정신적 학대로 심한 상처를 받은 그런 정신 불안증에서 온 증상들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옮겨온 후 이 개는 가는 곳 마다 자기의 배설물을 정신없이 쏟아 놓고 이리저리 숨어 다니며 실수를 거침없이 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피해 다녔다.

우리 아이들이 십대로 들어가던 연령이었는데 그녀는 이미 아이들에 대해서 방패막을 치고 있었다. 이유가 어쨌던 그녀(신디)는 누구에게도 신뢰 을 잃은 상태였고 내가 안아주면  내 무릎에서 사시나무처럼 떨어 댔다 . 정신적 불안증을 보아 동물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학대에서 나타나는 온갖 증상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처음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신뢰를 얻는 일이 우선이었다.  사람처럼 많이 사랑을 보여주고, 안아 주고 자기를 해치지 않고 따뜻하게 해 줌으로서 우리에게 다가 오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집안 카펫에 흘리고 다니는 오물이 커다란 문제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내가  일하는 병원에 10일간 휴가을 신청하고 그녀가 가족이 되기 위한 훈련으로 들어갔다.

나는 매일 하루하루 일정을 짜서 아침 8 시부터 밤 10 시까지 매 2시간마다 소변을  밖에서 보게 하는 기초 훈련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과 해야 할 목적을 알리는  “신디,피 피” 라는 언어를 써서 개가 무엇 하러 나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일이 매일 계속되었다.  일주일이 지나니 그녀는  한국말, 영어가 어느정도 주인의 언어를 알아듣기 시작했다. 밤에는 훈련이 끝날 때까지 세탁기가 있는 일층 방에서 잠을 재웠는데 그것이 가장 힘든 일중에 하나였다. 왜냐하면 밤이면 그녀가 우리 곁에서 같이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밤마다 문을 두발로 긁어 되고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친 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침에는  발톱 밑에서 흘러 내려온 피를 제거하는 일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만약에 내가 그 훈련을 중단 하였더라면  신디는 내가 바라는 훈련을 끝마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0일간의 훈련이 끝나면서 우리와 언어가 소통되고 칭찬 받는 일이 매일 계속되면서 그녀는 우리 식구가 되어갔고, 나도 그녀에게 신뢰를 쌓아갔다.  그러면서 그녀는 우리와 한방에 준비해 놓은 자기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점점  우리의 노력의  대가가 신뢰로  보답 되면서 그녀와 가족관의 관계는 땔 수가 없게 되어갔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개는 입안에서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이빨이 썩어가고 있었다. 전주인이 개 음식이 아닌 양념이 든 한국 음식을 먹이므로 서 생긴 구강 질환이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개를 수의사 한 테 데려가는  일이었다.  제일 먼저 수의사가 들려주는 말이 이빨 6개를 제거 해야 한단다. 어쩔수 없이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켜서 치료를 받은 후에 데리려 갔는데 입원비를 포함한 거금의 치료비를 치러야 했다.  일년이 지나서 같은 문제로 결국 나머지 이빨 모두를 제거하고 나니  어린 할머니가 되었고 그래도 암컷이라고 매달 치르는 주기는 잊지 않고  찾아왔다.   


나는 그녀가 우리 식구가 되면서 일거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음식은 내 손을 거처야 먹게 되고, 털로 인한 집안청소,  매주 목욕시키는 일, 발톱을 잘라 주는 일, 산보하는 일, 병원에 다리고 가서 예방접종을 시키는 일, 등으로 더 시간에 쫓기게 되었지만 대신 그녀가 우리 식구에게 정서적으로 준 즐거움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지금까지  기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들이 피아노를 치면 어디선지  달려와서 의자위에  올라가 박자에 맞추어서  머리를 들어 올려 박자를 맞추어서 같이 노래를 불러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일이 세월과 함께 무한한 기쁨으로 보답되고 누구보다도 이렇게 아들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갔다.

이상한 일은  어릴 때 자기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이 방문을 오면 그들을 기억하고 슬그머니 도망을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녀는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힘들었던 일들을 모두 사람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좋아서 온갖 재롱을 다부리고 자기의 혀를 한자나 빼고서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다는 심정을 갖은 몸짓 표현으로 나타내든 모습들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내 일거 일동에 참여하고 저녁 식사후에 가족실에 와서 앉으면 반드시 내 무릎은 그녀의 안식처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 세월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가 우리 식구가 된 지가 10년이 지난 후  수명이 다 되어 3 일간을 앓고 우리 곁을 떠나기 전날 밤 자기가 떠날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부 부을 처다 보고 꼭 할말이 있다는 듯 목을 빼서 처다 보고 눈물을 흘렸다. 정말 아무도 믿지 못할 이 행동을 남편과 내가 함께 지켜보았으니 그녀가 우리에게 주고간 사랑의 고백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게 그날 밤 그녀는 나의 품에서 눈을 감았고, 동물병원에서 화장 되었다. 이렇게 우리와 잠깐의 약속이 아닌 그토록 긴 세월의 인연을 끝내고 떠나갔다. 그냥 2년만 돌봐 달라던 그 약속이 10년을 넘게 함께하면서 한없는 사랑과 온갖 기쁨을 가족들과 나누고 떠났으니 지금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녀는 영원히 기억속에 살아있는 긴 세월에 함께한  딸과 아들이 보내오는  카드속에  잊지 못할  양녀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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