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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의 화려한 귀환?

진중권 2021-01-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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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가 너무 쉽게 약해지지 않도록 대통령께서 외롭지 않도록 뭔가 할 일을 찾아야겠다.” 법원에서 검찰총장 징계의 효력을 정지시키자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SNS에 글을 올렸다. 대통령이 법치를 무시했다가 큰 망신을 당한 상황. 그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엔 오직 ‘지도자 결사옹위’의 생각밖에 없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청와대

 그가 대통령께서 외롭도록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청와대의 모든 비리가 실은 그가 비서실장으로 대통령 곁에 있을 때 저질러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이 비위에는 청와대 8개 부서가 연루됐다. 이 모든 부서를 움직일 권한을 가진 이는 내가 아는 한 비서실장밖에 없다.


 그 시절 전병헌 정무수석과 조국 민정수석의 직권 남용 사건이 일어났다.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도 그가 청와대에 있을 때의 일. 이번에 문제가 된 김학의(전 법무차관) 출국금지 사건도 그의 재임 중에 일어났다. 적법 절차를 무시한 이 사건에는 그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개입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일찍이 이렇게 많은 청와대 인사들이 비리에 연루된 적이 있었던가? 정무수석·민정수석·비서관·행정관 등 기소된 이만 열댓 명. 혐의도 뇌물에서 직권 남용, 공직선거법 위반까지 다양하다. 한둘이라면 ‘개인적’ 일탈이겠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이 동시다발로 사고를 쳤다면 뭔가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청와대의 작풍(作風)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무능의 소치가 아니다. 그 모든 사고가 민주주의 체제의 운영원리 및 작동방식에 대한 근본적 몰이해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최근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쏟아내는 발언들은 그 오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뚜렷이 보여준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일련의 사건에 드리운 대통령의 그림자. 울산 시장선거 개입은 애초에 VIP 관심 사업으로, 잘 봐줘야 ‘손타쿠’(忖度,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는 의미의 일본어) 사건이다. 경제성 평가조작 사건도 “월성1호기는 언제 멈추냐?”는 대통령의 한마디로 시작됐다. 김학의 사건 역시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질 일”이라는 그의 한마디가 발단이 됐다.


 대통령의 명이라면 법을 어겨서라도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는 관념. 이는 사실 전체주의 국가의 초월적 지도자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법치국가에서는 아무리 대통령의 뜻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 그때는 대통령에게 사실대로 보고하고 무리한 지시를 철회시키는 게 올바른 참모의 역할일 게다.


 그릇된 보좌로 정치적 위기에 처하자 집단으로 대통령 보위에 나섰다. 하지만 제 버릇 남 주나. 역시 법률과 절차를 무시하며 억지로 검찰총장을 내치려다 망신만 당했다. 대통령이 여론으로부터 고립되자 그분이 ‘외롭지 않도록’ 고독 관리사로 나섰다. 이 또한 시대착오적 지도자 숭배의 흔적이다.


 선출된 권력이 법을 초월한 통치행위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거꾸로 이에 제동을 거는 검찰·감사원·사법부의 기능을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윤건영 의원), “정부의 민주적 시스템을 붕괴”(추미애 법무장관)시키는 행위라 부른다. 아예 의식 자체가 물구나무서 있는 것이다.


국민의 과반은 그들을 뽑지 않았다

 임종석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가 합의하고 지켜가는 민주주의 제도는 매우 불완전하며 허약하며 빈틈 투성이다. 각각의 구성원과 기관들이 끊임없이 성찰하지 않는다면 그냥 쉽게 무너져 내린다. 검찰과 법원이 서슴없이 그 일을 하고 있다. 도구를 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스스로 만든 권한처럼 행사한다.”


 ‘스스로 만든 권한’이 아니니,검찰과 법원은 그것을 선출된 권력에 들이대지 말고 그냥 정권의 ‘심부름’이나 하라는 얘기다. 이 해괴한 논리는 당연히 감사원에도 적용된다. “주인의식을 가지랬더니 아예 주인 노릇을 한다.” 아마도 그의 머리에 ‘권력분립’이라는 개념만큼 낯선 것은 없을 게다.


 그들은 검찰이나 법원의 것과 달리 자기들의 권한은 국민에게서 직접 나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43%를 받았을 뿐, 국민의 과반은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게 권력분립이 필요한 이유다. 즉 검찰·법원·감사원은 그들을 선택하지 않은 과반을 포함한 온 국민의 눈이다.


 검찰총장 징계를 무산시키자 임종석은 법원을 이렇게 비난했다.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염치도 자신들의 행동이 몰고 올 혼란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국민의 눈치’를 말하나 정작 국민의 과반(52.4%)은 그 결정을 ‘잘한 일’이라 대답했다. ‘잘못된 일’이라는 의견은 40.6%에 머물렀다.


망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그럼에도 그가 ‘국민’을 파는 것은 ‘대중과 지도자의 직접적 결합’이라는 이상한 정치모델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전체주의적 모델에서 그 결합 밖의 사람이나 기관은 간단히 기득권 세력으로 치부된다. 임종석 역시 판사들에게서 “너무도 생경한 선민의식과 너무도 익숙한 기득권의 냄새”가 난다고 비난한다.


 법관 평가에서 만점을 받은 판사가 기득권 세력이라는 판단의 근거는 화학적 성격의 것, 즉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럼 그 결정이 잘한 일이라 대답한 국민은 어떡하나? 간단하다. 그냥 국민이 아닌 것으로 치면 된다. 그들은 ‘히코쿠민’(非國民), 즉 청산해야 할 적폐세력, 척결해야 할 토착왜구일 뿐이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정경심 교수의 판결이 합당하다는 의견은 60%, 부당하다는 32%로 나타났다. 하지만 어차피 60%는 비국민, 진실은 ‘참’ 국민 32%의 의견에 있다. 그들에게는 이들이 판단의 최종심급. 이 콘크리트층이 사법부 위에 있다고 보기에, 법원이 “사실과 진실을 쫓지 않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임종석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합의하고 지켜가는 민주주의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전체주의 정권을 추종하던 젊은 시절에 뇌에 새겨진 생각의 집요한 흔적이다. 그로 인해 청와대가 비리의 온상이 되고, 당정청이 국가 시스템을 공격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전대협 전사들이 망국의 강철대오가 된 것이다.


후퇴하는 한국의 민주주의

 이 상황이 나라 밖으로도 알려졌나 보다. 얼마 전 민주주의 이론의 석학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며 이렇게 지적하고 나섰다. “선거에 이겼다고 민의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추구할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사법부와 검찰의 독립, 정보사회 독립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뒤늦게 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윤석열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 부르며 그가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총장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징계 사유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월성 원전 감사 역시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평가해 주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가 이번에 한 것이 바로 그동안 유기해 온 ‘대통령직의 윤리적 기능’. 그 기능을 진즉에 발휘했다면 이 모든 혼란은 없어도 됐을 것이다. 게다가 검찰·감사원·사법부에 대한 당·정·청의 공격 자체가 그의 묵인 아래 이루어진 일. 이를 아는 국민에게는 그의 발언이 유체이탈 화법으로 비칠 수밖에.


대중선동으로 출사표

 아무튼 임종석만 머쓱해졌다. 그 직전까지 열심히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광훈·윤석열, 그리고 이제는 최재형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 다들 김어준을 따라 이성에서 후각으로 진화론적 퇴행을 완수한 모양이다. 그렇게 발달한 코로 왜들 제 몸의 구린내는 못 맡을까?


 그의 갑툭튀 행보는 정치권에서 대선 출사표로 해석된다. 하지만 청와대를 비리 소굴로 만든 비서실장 시절의 행적을 보나, 대중 선동으로 자기 정치를 시작한 지금의 행태를 보나, 그의 정치관은 “우리가 합의하고 지켜가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즉 그에게는 민주주의 정치에 요구되는 기초소양이 없다.


 전대협 시절 그들이 아는 유일한 설득 커뮤니케이션은 선전 선동. 마타도어의 수준을 보라. ‘윤석열·최재형=전광훈’이란다. 이게 다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이라는 문건으로 정치학습을 시작했던 시절의 후유증. 제발 그가 나라를 구하는 심정으로 헛된 꿈을 접었으면 좋겠다. 제2의 조국은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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