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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수진의 영화 이야기

정글 크루즈

수진 2021-12-02 0

필자는 최근 기회가 되어 디즈니 관련 직종에 발을 담가보게 되었다. 


직원 트레이닝 자료 중에 '디즈니는 문화컨텐츠 재벌로서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문구가 있는 걸 보고 혀를 내두른 기억이 난다. 


지금도 다른 브랜드들을 공격적으로 흡수하며 몸을 불리고 있는 디즈니지만 그 중에서도 디즈니가 특히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운, 온전한 자사 IP를 이용한 프랜차이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캐리비안의 해적' 이나 '투모로우랜드' 등 디즈니는 자사 놀이공원의 기구를 프랜차이즈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 


'정글 크루즈' 역시 동명의 놀이기구에서 설정과 모티브를 가져온 영화이다.


학자였던 아버지에게서 모험심과 야망을 물려받은 고고학자 릴리는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융통성 없고 보수적인 학계에 의해 항상 무시받기 일쑤다. 


아버지가 남긴 지도를 따라 만병을 치유하는 효능을 가진 전설의 '달의 눈물' 을 찾기 위해 릴리는 못미더운 남동생 맥그리거와 함께 아마존으로 가고, 강을 따라 관광객을 싣고 다니는 프랭크는 릴리와 맥그리거를 이용해 한탕 챙길 계획을 세운다. 


정글 크루즈는 최근 나오는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무작정 판을 벌리며 속편 예고만 하다 흐지부지하게 끝내는 대신 작고 한정된 세팅과 적은 수의 캐릭터에 집중하며 깔끔하고 완성된 영화를 선보이는데 중점을 둔다. 


그 덕분에 산만하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액션 코미디 영화가 나왔다. 


항상 힘세고 유쾌한, 달리 말하면 틀에 박힌 역할만 맡는 드웨인 존슨이지만 그렇기에 아마존 강을 따라 여행하며 보물을 찾는 단순하고 신나느 줄거리의 주연으로서 너무나 잘 어울린다. 


제법 구시대적인 영화의 배경과 설정과는 달리 남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고 뚜렷한 자신의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현대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에밀리 블런트 역시 액션 모험극의 주인공으로서 잘 어울린다. 


강과 폭포를 넘나들거나 맹수와 투닥거리며 뒹구는, 아마존 밀림 하면 으레 생각날 만한 액션 장면들 역시 잘 짜여 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주어진 틀을 깨버리는 참신한 장면이나 기억에 남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는 느낌이 들어 살짝 아쉽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악역들이다. 


정확히는 악역들의 디자인이다. 평범하게 못된 디즈니 악당인 요아힘 왕자는 주인공들을 쫓기 위해 정글에 봉인된 스페인 개척자들을 깨운다. 


큰 죄를 짓고 그 값으로 밀림에 몸을 빼앗긴 이 악당들은 저마다 밀림의 상징물로 변해버렸다.


껍데기만 남은 채 뱀들의 보금자리가 되거나 살아 움직이는 벌집과 수풀이 된 이들은 피 한방울 흐르지 않는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가족영화 답지 않게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보여준다. 


변해버린 몸을 이용해 나무 뿌리를 조종하거나 몸에서 벌을 뿜어내는 등 뒤틀린 몸을 십분 이용한 볼거리를 선보이는 악당들은 마치 몸 뿐만 아니라 인간성마저 정글에 빼앗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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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모습을 뽐내는 와중에도 몸을 파고든 벌집에 손가락을 담갔다 빨아먹으며 '나 맛 좋은데?' 하며 농담하는 등 유머를 잃지 않는 장면 역시 기억에 남는다.


멋진 볼거리와 단순한 줄거리, 그리고 깔끔한 마무리까지 있는 무난하게 즐거운 영화 '정글 크루즈'. 배에 바람 가득 채우고 판만 크게 벌리지만 정작 실속은 없는 공갈빵같은 영화들이 범람하는 이 시기에 빛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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