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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여동생 나비 작가 김현정은 효녀 심청이었습니다.”

김병년 2022-09-23 0

“제 여동생 나비 작가 김현정은 효녀 심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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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저는 이남 일녀 중의 장남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이학년 때 아버님은 월남에 가 계셨는데 아버님이 부재중에 초등학교 일학년이던 막내 남동생이 병을 얻어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떠나갔습니다.


오직 가족의 안녕을 위해 전쟁터에서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지내시던 아버님께 어머님은 차마 그 사실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막내 남동생이 떠나고 일 년 뒤에 삼 년 만에 귀국하신 아버님의 그 무너질듯한 슬픔은 어린 나이의 제가 보기에도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삼 년 만에 막내 남동생 없이 큰 죄를 지은 듯이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아버님 앞에 섰을때 "병록이는?"하고 막내 남동생을 찾다가 사실 내용을 들으시고 넋을 잃으시던 아버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끝내 막내 남동생을 못 잊으시던 부모님께서는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제가 대학 일 학년 때에 막내 여동생을 본 것입니다.


막내아들을 잃은 슬픔을 딛고 어렵게 얻은 그 귀한 막내딸은 부모님의 각별한 사랑 속에 무난하게 성장하여 대학을 마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또 세월이 흘러 내 조국 대한민국에 IMF 돌풍이 몰아치고 이런저런 사연으로 저는 캐나다에 이민을 와 22년째 살고 있습니다.


연로하신 두 분 부모님은 저 대신 결혼한 막내 여동생이 모시고 지내왔습니다만 아버님께서는 뇌졸증으로 십 년 가까이 전신불수의 모습으로 지내시면서 제 여동생은 식사는 물론 용변 수발까지 다 해드렸어야 했고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에 84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으며 4개월 뒤에 어머님께서도 아버님의 뒤를 따라가셨습니다. 


막내 여동생을 끔찍이 사랑하시고 보살피셨던 두 분 부모님께서는 노년에는 반대로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막내 여동생과 함께 생활하시며 막내 여동생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화가의 길을 걸으며 창작활동은 물론 대학에 나가 강의도 하랴 거동이 불편하신 병환중의 부모님을 모시랴 가정생활도 챙기랴 막내 여동생의 생활 무게가 참으로 막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막내 여동생만 생각하면 대견하고 고맙기도 하지만 오빠로서 가슴이 아프고 참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막내 여동생이 이제는 오십줄에 접어들었습니다.


자신의 일과 가정생활 등 바쁜 와중에도 활발한 창작활동을 통하여 여러 가지로 부족한 작품들이지만 국내외에서 많은 개인전을 오픈하고 전시회에도 빈번히 참가를 해오면서 이제는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며 나비작가 김현정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의 고통을 인내하고 부활하는 나비처럼 제 여동생이 나비작가 김현정으로 거듭나는 것 같아 가슴 뿌듯한 기쁨을 느낍니다. 


이번에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전시회의 LG 디스플레이의 신제품 전시관에서 나비작가 김현정의  LED 작품들이 크게 호응을 얻어 지면에 기사화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나비 작가 김현정은 얼마 전까지 국제아동돕기연합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였으며, 시 당국과의 협업하에 서울 시청역과 안양역 그리고 의정부역의 지하철 역사에도 '기부하는 나비계단' 이라는 이름으로 재능기부도 한 바 있습니다. 


못난 오빠 덕에 더 힘들게 작품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막내 여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여동생을 세상에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캐나다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이 오빠의 마음을 헤아려들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언제고 제 여동생의 작품 전시회를 접할 기회가 있으시다면 이름이 생소한 낯선 작가라 생각 마시고 오빠의 글을 통해 이름을 들어 알고 있다고 따뜻한 격려의 말씀 한마디씩이라도 건네주시면 제 여동생에게는 크나큰 힘이 되리라 생각하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마음 아팠던 이 오빠에게도 큰 위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가족 자랑은 팔불출 같은 처신인 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동생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민망함을 무릅쓰고 제 여동생 자랑을 해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제 개인적인 가정사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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