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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기뻐하라

정재천 2021-01-28 0

주 안에서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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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성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경 구절이 무엇인지 검색해 봤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구절이 하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바울이 감옥에서 작성한 기쁨에 관한 이 구절이 얼마나 반증적인 능력을 가진 말씀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정말 한이 많은 아픔의 민족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얼마나 기쁨을 얻고 싶으면 이토록 간절한 기쁨의 축복과 평안을 바랄까! 그런데 이 말씀을 암송하고 다이어리에 품고 다니는 노력을 해도 좀처럼 우리 삶에 기쁨과 평안을 얻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오늘 본문 4절에서 “기뻐하라”라고 두 번씩이나 강조한 것에는 번역 성경에는 잘 보이지 않는 놀라운 신학적인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쁨(rejoice)”이라고 번역하는 이 단어가 매우 신학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영향으로 마치 이 “기쁨”이 “행복”이라는 단어와 혼용되어 사용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지만 기쁨은 행복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가치입니다. 왜냐면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과 다시 연합(re-join) 될 때에만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신앙인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이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재연합이 기쁨의 신학적인 근거입니다. 사실 이것을 이해했을 때에만 왜 5절에서는 갑자기 느닷없이 “너희 관용을 모두에게 알게 하라”는 부담스러운 구절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면 여기 사용된 “관용”이라는 단어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친절”이란 세상적 가치가 아닌 오직 하나님만이 소유하신 영원한 너그러움을 상징하는 신학적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즉, 4절에서 하나님과 다시 연합한 사람의 기쁨을 통해 온 세상이 “하나님의 관용”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놀라운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제서야 오늘 본문의 “기쁨,” “관용,” 그리고 “평강”이 왜 좀처럼 얻기 어려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쉽게 성취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로 다시 새롭게 주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이러한 것들을 모두 자연스럽게 선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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