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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전체주의 권력의 법치 파괴를 목도하고 있다"

이상언 2020-12-03 0

  지난해 가을 이른바 ‘조국 사태’의 격랑 속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권경애(57) 변호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페이스북 글을 날려 ‘전국구 뉴스 메이커’가 됐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이며 대표적 진보 진영 진지인 참여연대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이었기에 비판의 무게감이 달랐다. 조국 반대자들은 “봐라, 너희 편에서도 문제라고 하지 않느냐”며 그의 글을 열심히 퍼 날랐고, 조국 수호자로 나선 이들은 “원래 좀 삐딱한 인물”이라고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그 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서민 단국대 교수, 김경률 회계사 등과 더불어 진보 세력에 쓴소리하는 논객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들과 함께 이른바 ‘조국 흑서’라고 불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연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작업을 질타하는 페이스북 글을 쓰고 있다. 무엇이 그를 ‘배신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집권 세력을 비판하는 고단한 길을 걷게 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지난 2일 그를 대면했다. 그가 일간지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운동권 출신이다. 1983년에 연세대에 입학해 95년에, 12년 만에 졸업한 것으로 인물 정보가 나온다. 무엇을 했던 것인가.

 “85년에 제적됐다가 YS(김영삼) 정부 때 재등록이 허용돼 졸업장을 받게 됐다. 대학 입학 뒤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서울 가리봉동 전화기 부품 공장에 취업해 납땜 일을 했다. 얼마 뒤 학력을 속인 위장 취업이라는 게 들통나 쫓겨났다. 그 뒤에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과자 만드는 대기업 H사와 식품 생산업체 O사에서 일했다. 3교대로 과자 포장하는 작업의 조장까지 맡았다. 인간이 기계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때 포장했던 제품들이 요즘도 나오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고, 이후엔 사법시험을 치러 법조인이 됐다. 왜 그랬나.

 “현장 노동자들을 규합해 조직화를 해야 했는데 사교성이 부족했다. 그 결과로 운동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못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됐다. 학습지 교사를 하려 해도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다. 그즈음 부친이 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장녀로서 책임질 부분이 있었다. 노동 현장을 떠나 다시 학교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졸업을 앞두고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을 고려했는데 친구가 어차피 법 공부를 해야 하니 사법시험을 쳐 보라고 권유했다. 2년이면 될 것 같았는데 5년이 걸렸다.”


 -법조인 중에서 통상과 자본시장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 분야 공부를 왜 하게 됐나.

 “신림동 고시촌에 있을 때 ‘IMF 사태’가 터졌다. 들려오는 뉴스에 늘 착잡했다. 특히 가장들의 잇따른 극단적 선택에 가슴이 아팠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진보와 민중을 얘기했던 사람들이 원인을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세계화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장서서 주장했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국제통상학을 공부했다. 관련 학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고용과 노동 환경에 주목했다. 통상이나 금융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생겼다.”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와 연계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노무현 정부 때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의 일이 벌어졌다. 당시 시민운동 측에는 WTO나 FTA가 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무조건 반대’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봤다. 협상 거부만 외칠 게 아니라 협상에 참여해 구체적인 사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검찰 개혁 작업에 참여하다가 왜 갑자기 ‘반(反)조국 전선’에 뛰어들게 됐나.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각론에선 다소 생각의 차이가 있었지만 조국 민정수석이 추진하는 개혁에 협조했다. 서울변호사회의 공수처 TF에서 활동하며 여러 방면으로 그를 돕기도 했다. 그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뒤 표창장·스펙 위조 문제가 터졌을 때는 명백한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한 끝까지 지지하고  응원하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9일에 일이 터졌다. 그날 조 전 장관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깨졌다.”


 -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법무부가 대검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휘를 배제한 조 전 장관 수사팀을 꾸리자고 제안했다는 것이 알려진 날이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이야기했던 사람들인데, 설마 수사를 방해하겠나 하는 믿음이 있었다. 조 전 장관도 수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권력이 수사에 개입하는 것은 법치주의 부정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 조 전 장관이 아들 대리 시험 본 것을 ‘오픈 북 시험’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주장했다. 상식마저 부정했다. 이 정부와 주변 지지 세력의 반성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괴롭힘을 많이 당했을 텐데.

 “울산시장 선거 사건 관련자 공소장에 기재된 게 사실이라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썼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내 이름이 올랐다. 이틀 동안 전화 때문에 사무실이 마비됐다. 목숨을 운운하며 위협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국 사태 이후 청와대나 여당 쪽 인사들의 압박, 회유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부분을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에는 추미애 장관의 검찰총장 쫓아내기를 지적하는 글을 많이 쓰는데, 이 사태를 어떻게 보나.

 “전체주의적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산 경험으로 배우고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와해하는 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헌법 공부를 하면서 이전에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르던 체제의 헌법 한 줄 한 줄이 얼마나 많은 민중의 피에 의해서 쓰였는지를 가슴 저리게 느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유주의적 헌법을 사랑하게 됐다. 지금 추 장관은 법으로 권력을 견제하고 통제한다는 헌법정신을 허무는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 윤석열 총장이 왜 법치주의와 헌법정신을 그토록 열심히 이야기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집권 세력이 왜 이런다고 생각하나.

 “권력은 남용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법에 따라서만 권력을 행사하라는 게 법치주의다. 그 법치주의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된다. 지금 정권의 주류 인사들은 자유주의적 법치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전사’로 키워졌다. 투쟁에 능하다. 뭘 해서든 자신들이 정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지금 그들을 견제할 정치 세력이 없으니 더 그럴 수밖에 없다.”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 같나.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를 보면서 딸이 ‘엄마, 저 사람들 왜 이래?’라고 물었다. 나라의 장래가 암담해 보였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 때 필진 모두 ‘이게 팔리겠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했을 때도 좌절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추 장관 덕분에 이 정권의 실체를 알게 되는 사람이 늘어난다. 나는 역사는 때로는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전진한다고 믿는다.”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가는가.

 “한 자리 안 줘서 이러는 것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나도 눈 딱 감고 조용히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성격상 부당함에 눈 감는 게 어렵다. 내가 지식인, 법조인이 되는 데 이 사회의 많은 사람이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책무감 같은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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