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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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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의 긴 하루

이시랑 2024-08-16 0

어둑어둑 저녁 햇살 거둬

바랑 지고 오늘이 언덕 넘는다


키 큰 건물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불빛 챙겨


사무실 유리창 틈새로

귀가를 서두른다


후우-

오늘을 잘 살아 냈네


축하해 

너를

나를

그를

모두를


가벼워지고 싶어

신발을 벗어 던진다


현재를 빠져나온 불빛들이 

아스팔트 길 위를 걸어 집으로 온다


넥타이가 훌렁 목을 넘어

장롱에 쉬러 들어간다


뻐근한 허리도

혁대를 느슨히 풀어 젖힌다


오늘은 꽃이었다


방바닥에 

우수수 오늘이 진다

꽃잎처럼


두리뭉실 배추 포기 같은 여자가

배추 색 웃음을 웃으며


저녁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반주 한잔 후룩 넘긴다

캬-아


온종일 상한 속이

생선 냄새 나는

찌그러진 어느 환영(幻影)을

시원하게 배설한다

크으으


신선한 내일은 

하얀 희망이다


비록 그대

날 속일지라도


난 오늘

꽃 진 자리

경건하게

비문(碑文)을 쓴다


짧은 생의 긴 하루

그냥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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