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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수진의 영화 이야기

창조의 어머니

2020-08-06 0

 [지난 2월 17일 10억 조회수를 돌파한 'A-ha' 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 中-


스티브 잡스는 생전 '좋은 예술가는 모방한다, 훌륭한 예술가는 훔친다' 라는 말을 즐겨했다고 한다. 모방에서 탄생한 예술로서 피사체의 사진을 찍고 프레임 단위로 그림을 덧그리는 로토스코핑 (Rotoscoping) 기법은 카메라의 현실성과 애니메이션의 비현실성을 동시에 살릴수 있는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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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의 제작과정]


세계 최초의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인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당시 적색과 녹색의 2색 테크니컬러 영화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에게 3색 테크니컬러로 말 그대로 총천연색의 쇼크를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고 우아한 동화 (動畵) 를 위해 애니메이터들은 실제 배우들의 움직임을 따라 그려 지금 봐도 정교한 애니메이션을 구현해냈다. 당시만 해도 작은 규모였던 디즈니는 이런 호화롭고 비효율적인 제작과정으로 인해 몇번이나 도산의 위기에 처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백설공주는 디즈니 신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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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 中]


17년 개봉한 '러빙 빈센트' 는 빈센트 반 고흐의 비극적 인생사와 그의 예술에 바치는 찬사이다. 고흐의 고독한 죽음을 파헤치는 내용의 이 영화는 100명이 넘는 화가들이 고흐의 화풍을 오마쥬해 그려낸 그림들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미 덕분에 '러빙 빈센트' 는 무수한 찬사를 받았다. 세계 최초의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서 영화의 모든 순간, 프레임 하나하나가 작품 한 폭이니 그 찬사가 과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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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 '악의 꽃' / 하 - '하나와 앨리스 : 살인사건']


애니메이션 강대국 일본 역시 로토스코핑을 사용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 나온 작품들 TV 애니메이션 '악의 꽃' 과 극장용 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 : 살인사건' 은 같은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꽤나 상반된 접근을 하고 있다. 사실성을 살려 배우들을 덧그리다시피 한 악의 꽃은 상상력이 결여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하나와 앨리스는 배우들의 위에 애니메이션 특유의 비현실적인 화풍을 입혀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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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작 반지의 제왕의 마왕 '나즈굴' 들]


1978년 제작된 만화영화 '반지의 제왕' 은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다. 반지의 제왕은 로토스코핑을 통해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등장인물들의 비율과 외모는 만화적으로 표현했다. 이 덕분에 판타지 만화영화에 걸맞는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느낌을 주지만 이로 인해 악당들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악당 '나즈굴' 들은 카메라에 담긴 배우들을 덧그리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편집을 하는 식으로 구현되었다. 사진에서 튀어나온듯한 이질적인 마왕들이 밝은 색을 두른 만화영화의 주인공들과 겨루는 장면은 기묘하면서도 그들의 대립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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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시리즈 '언던']


사진과 애니메이션, 3차원과 2차원의 독특한 결합. 기술의 발전과 기법의 진화는 새로운 예술로의 무궁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렇듯 '로토스코핑' 은 단순히 모방을 하는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훔쳐내 원래 자신의 것이였던것처럼 둔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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