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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비련

정충모 2021-09-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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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비련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검단 산 (黔丹山)은 등산코스로는 어느 명산 못지 않게 이름난 산이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웅장하거나 험준하지는 않지만 남한산성 까지 이어진 거대한 준령은 바라만 보아도 황홀한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더욱이 서울 근교라서.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명산이 없어 등산 코스로는 명실공이 천해의 요새다.

몇 해 전 쯤 한국에 나갔을 때다. 산을 바라보니 온통 ‘만산홍엽’으로 물들고. 하얗게 서리가 덥혀 가슴이 설래 그 옛날 추억을 생각나게 했다. 모두가 변했지만 산만은 옛 산 그대로여서 “내놀던 옛 동산 에 오늘 와 다시 보니, (홍난파. 곡 이은상 시)의 노래가 응얼거려진다.

능선을 오르자니 벽두부터 기가 죽는다. 일행들이야 매일같이 올라 숙달된 코스라  무리가 없지만, 오랜만에 오른 난 패잔병처럼 따라다니느라 산길의 의미도 재미도 반감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포기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낙오자라는 오명이 찍힐까 보아 오기로 일행을 따랐지만 숨이 가쁘고 콧속에서 단내가 풍긴다. 그야말로 젖 먹은 힘까지 다 투자하자니 혈기왕성했던 젊은 날이 그리워진다.

검단산은 준령 뿐만 아니라 신성한 산으로도 이름난 산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에는 이렇게 검단 산이 기록되어 있다. 온조왕이 도읍할 곳을 정하며 “생각컨대, 이 하남 땅은 북(北)으로는 한강을 띠고, 동(東)으로는 벌 봉 높은 산에 의지하고 남(南)으로는 옥(玉)택을 바라보고, 서(西)로는 큰 바다를 격하고 있다고 되어있다.

거기서 운치 좋은 안쪽으로 향하면 바로 검단산 입구가 나오는데 여기서 몇 마장 더 올라가다보면 “유길준” 선생의 묘가 나온다. 유길준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비 미국 유학생이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들과는 뜻을 함께 했던 선구자다. 미국과 서구의 견문을 서유견문(西遊見聞)을 통해 소개하였는데 시대를 만나지 못해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던 분이다. 일본이 준 작위도 거부하였던 대쪽 같은 분인데 여기서 대하니 100년 전 이 나라의 안타까운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팔 당을 사이에 좌로는 예봉산 우로는 검단산이 자리하고 있어서 한강물이 협곡 사이를 흐르는 구간이 된다. 상류에는 팔당댐이 막고 있어 수량도 줄고 세차게 흐르는 강물의 모습도 볼 수 없지만 전에는 정선 ‘아우라지’ 뗏목이 지나던 길목이요. 남한강 북한강을 타고 한양으로 오던 세미와 공물이 지나던 조운(漕運)의 강줄기 얻는데, 지금은 그 자체가 소멸되어 문화의 향류는 이곳에도 비켜간 지 오래되었다.

오호라, 애달프고, 애달프다. 그 옛날 고려의 충신들이 이 태조(이성계)를 피해 생을 마감한 한 맺은 ‘정선 아리랑’의 선율이 뗏목에 같이 떠내려와 어디선가 들려 오는듯하다.

이윽고 팔당대교에 다다르면 위례 사랑 길이 시작된다. 이곳에서부터 팔당댐까지 강기슭을 끼고 걸을 수 있는데 발짝마다 먹을거리 골목으로 변해 버려 옛길을 상상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창모루 포구에는 일본인들이 만든 수리조합이 있는데. 그 강물을 끌러 올려 석바대(당시 동부면 하남시장) 일대가 논농사를 지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거기서 나오는 벼들을 일제가 본국으로 수송을 하려고 만들은 창고인데, 그 창고가 있던 산과 강이 만나는 모서리라 하여 창모루라 하였고 한자로 쓰다 보니 창우(倉隅)가 되어 이곳의 지명은 지금은 창우동(倉隅洞)으로 변했지만, 우리 때의 토박이들은 아직도 정겨운 이름 창모루를 잊지 못한다.

시장기가 발동하여 창모루 쪽으로 내려왔다. 창모로 강은 내가 어렸을 적 자맥질하던 강이었다. 소라, 조개, 온갖 어류가 풍성했고 어려웠던 시절이라 강풀도 그때는 밥반찬으로 좋은 음식이었다. 

막걸리 집 하나가 고즈넉한 길 끝에 운치를 자랑하고 있다. 그것에 매료대어 등산객들이 조석으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죽마지우들이 유난히 이집을 고집한 것을 얼마 안 가서 깨달았다.

일행에 끌려 간 막걸리 집은 초등학교 동창생이 하고 있었다. 청순가련형에 언제나 슬플 얼굴을 한 아이. 무릎과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고 홀짝이던 아이. 유난히 새치 롬 을 떨던 아이. 그 모습에 매료되어 짓궂인 아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던 아이. 자기에게 이목을 끌기 위해 내숭을 떨던 호기심이 많던 아이. 학예에 때면 고향의 봄을 늘 독창을 하던 아이. 

미인 박봉이라 했던가? 조기 사별(死別)을 하곤 산전수전을 겪다 끝내 친정집 동네에 와 느지막이 선술집 주인노릇을 하는 그녀를 보니 연민의 정이 앞선다. 늦가을 초승달같이 차가와 늘 먼발치에서 훔쳐만 보던 아이 얻는대, 그의 가녀린 운명의 뒤안길에 비련이 앞선다.

불행을 같이 나누워도 모자란데 그녀의 불행을 보면 짜릿한 쾌감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못된 심사인가? 파랑새처럼 날아 다른 가지에 않아 우는 그녀가 미어서 옅을까? 총총히 그녀 집을 나서며 시조한수를 지어 카운터에 놓고 나왔다. 


서녘하늘 잿빛노을 가슴을 애이고.

설한풍경 옷매무세 고두세우는 늦가을 

찌이~익 매미소리는 나뭇잎 흔드는데


서럽게 스며드는 첫사랑의 동심은.

예나지금이나 변한 거는 업건 만은. 

짝사랑 회색 머리가 가슴 절려 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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