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흔적들” > 오피니언

본문 바로가기
토론토 중앙일보
오피니언 글사랑 마을 “추석의 흔적들”
글사랑 마을

“추석의 흔적들”

정충모 2022-09-12 0

“추석의 흔적들” 



f0897ada8120966529ef8a914cbf6772_1662991093_0275.JPG
 

추석 때만 되면 수마(水魔)의 심술이 고약한데, 올해는 유난히 심한 것 같다. 부산, 포항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려 아비규환이다. “설상가상” 가뭄까지 겹쳐 온갖 과일들이 제대로 익지를 못해 제철 맛을 내지 못하고 있다. 비를 바랄 때는 안 오고. 오지 말란 때 오게 하는 하늘의 심술이 얄궂다. 그야말로 향기 없는 가을이 될 것 같다. 


우리가 어렸던 시절엔 밤, 대추, 호두, 도토리는 주식에 가까웠다. 물론 사과, 배, 감 등 과일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값이 비싸 지금처럼 흥청대지 못하고 고작 추석 명절 때 차례 지낼 때만 사용했다.


‘처서’가 다가오면 그악하게 울어대던 말매미 소리도 쇠잔해진다. 그때부터 밤송이가 보송보송 자라다가 추석 무렵이면 아람으로 풍만해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진다. 그 밤을 주인 몰래 줍는 재미에 새벽잠을 설치기도 했다. 


밤나무, 대추나무는 분신 일부를 인간에게 주면서도 오히려 배은망덕을 당한다. 장대에 수도 없이 매타작당하고, 봉도 남발한 모습은 마치 아들 못 난다고 쫓겨난 대가(大家) 집 소실(少室)처럼 초라한 몰골로 서 있다.


밤은 한 군대 모아 삭혀야 한다. 그냥은 까면 따가워서 깔 수가 없다. 그렇게 삭여진 밤송이를 발로 꾹꾹 밟으면 껍질이 문드러지며 밤알이 튀어나온다. 그것을 얼지 않게 독에다 묻어두었다가, 화로에다 구워서, 할머니의 바닥난 옛날이야기를 보채가며 먹는 재미도 겨울밤의 짜릿한 낭만이었다.


여름 내내 말매미 울음에 시달림을 받은 대추 역시 밤 못지않게 인기 있는 과일이다. 대추는 따서는 큰 가마솥에다 찐다. 그냥 두면 썩기도 하지만, 벌레가 생기기 때문에 삶아서 일찌감치 지붕으로 올라간다. 멍석에다 말렸다가는, 닭이나 개들이 버르집어 놓아 그들을 피하는 길은 지붕밖에 없다. 지붕에 빨갛게 널려있는 대추 역시 군침을 흘리는 것은 밤과 다를 바 없다. 


감은 떫은 감과 단감으로 분류되는데 떫은 감은 껍질이 두 꺼서. 연시(홍시)나 곶감으로 만들어 먹는데, 단감은 껍질이 얇아 생으로 많이 먹는다. 우리나라 재래식 감은 대부분 떫은 감이고, 단감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어왔다.


감 역시 귀한 과일에 하나라 벽장 속에 고이 묻어두고, 할아버지. 할머니에만 드리던 것인데, 그것을 엄마 몰래 훔쳐 먹다 들켜 혼들이 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호두는 불포화지방산(특히 오메가-3), 비타민B1 등이 풍부한 고칼로리 식품이다. 하지만 껍질을 깐 호두는 상하기 쉽다. 따라서 껍질째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구입할 때도 가능하면 껍질이 붙어있는 것이 좋고 먹을 때마다 깨어 섭취하는 게 안전하고, 그래서 상한 산패취가 나는 호두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또 구멍이 뚫린 것은 벌레가 먹은 것이니 먹지 말아야 한다. 호두를 깔 때도 주의하여야 한다. 은행과 같이 껍질에 독성이 있어, 자칫 옻이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토리는 생으로 먹을 수가 없어, 가정의 생활양식으로 많이들 사용했다. 지금처럼 밀가루를 섞어 가미한 것이 아니고 순수한 도토리 앙금을 내려 만든 것이어서 보양 음식에 가깝다. 


도토리를 따려면 절구'돌 갱'이로 도토리나무 밑 등을 두들기는데, 큰 나무는 보통 2~3 말정도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밑동이 넓적하게 벌어져 있는 것을 보면, 도토리를 많이 생산 했다는 연륜의 증거다. 


그렇게 딴 도토리를 멍석에 말리는데 처음엔 노란 색깔이 회색으로 변하면서 껍질이 툭툭 터진다. 그런 다음 맷돌을 도토리 알에다 올려놓고 돌린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도토리들이 튀어나오며 알갱이만 남는다. 그것을 절구에다 빻는데, 어느 정도 도토리 형태가 부서지면 최종적으로 맷돌에다 갈아 시루에다 물을 주면서 앙금을 안친다. 그 앙금이 남아서 묵을 만드는데 그 과정이 “손오공”이 서녘으로 ‘수도’하러 가는 것만큼이나 고행길이다.


고유 명절 중에 하나인 추석은 설 다음으로 큰 명절이다. 추석 아침 제상(祭床) 위에 감, 배, 밤, 대추는 홍동백서(紅東白西) 를 차려놓고 제를 올린다.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사과, 배,감, 밤, 대추는 득의양양하게 제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독보적 존재다.


추석을 끝으로 가을의 만찬이 끝난 빈자리가 너무 허전하다. 장독대 광주리에 마지막 남은 솔잎이 붙어있는 송편 먹는 맛이 가을의 정취를 더욱 쓸쓸하게 한다. 대추나무 가지에 호젓이 매달려 대롱거리는 청개구리 집 역시 공활한 가을날을 더욱더 시리게 만든다. 


소슬바람에 벼이삭, 수수 이삭, 서걱거리는 소리가 마지막 가는 가을을 더욱 만추를 느끼게 하여 벌써 내년이 그리워진다. 하늘을 우러러본다. 단풍이 수려한 나뭇가지 사이로 퇴색된 구름이 살여울처럼 몰려온다. 그렇게 가을은 긴 여운을 남기고 차가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



제사상 


다시는 

안 볼 듯이 

훌쩍 떠난 고국 땅.


삶의 

테두리에 

잠겨진 타국 생활 


제사상 

홍동백서가 

매섭게 후려치네.


<조상님들 용서하소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오피니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