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산책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집에서부터 유튜브에서 듣던 사연 채널을 미처 이어폰도 꽂기 전에 들으며 길을 걸었던가 보다. 지나가던 여자가 “한국 분이세요?” 하며 말을 걸었다. 그 말을 듣고 옆을 보니 웬 동양 여자가 말을 거는 거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한국말이 들려서요.” 하며 다가섰다. 그제야 내가 이어폰도 꽂지 않아 옆 사람에게까지 들렸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산책길에서 만난 그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 산책하는 방향이 같아서 같이 걷게 되었다. 걸으며 얘기를 하다 보니 그녀는 매일 만 7천 8천 보를 걷는다니 산책이 아닌 운동에 가까웠다. 그날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좀 걷다 보니 내겐 좀 힘에 부쳤다. 그래서 마침 벤치가 눈에 띄기에 좀 앉아서 쉬자고 했더니 자기는 운동을 하며 쉬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난 걷다가 햇살이 좋으면 의자에 앉아서 쉬기도 한다고 했더니 그녀는 아예 음지에 있는 의자로 앉는 거였다. 그래서 난 햇빛이 좋아 이쪽으로 앉겠다며 햇빛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날은 그녀의 걷는 양으로 본다면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나로서는 그 정도면 하루 운동량은 충분하다 싶어 그만 집으로 가자며, 마침 날씨도 쌀쌀하니 커피숍에 가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며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 만났는데 이런 날은 밖에서 커피라도 마시는 맛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느냐며 커피숍으로 가자고 다시 제안을 했다. 그랬더니 굳이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해서 처음 만난 날 그녀의 집에 가서 밥까지 먹고 오게 되었다.
우리는 운동, 취미 활동도 누구와 같이하면 지루하지 않고 더 꾸준하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동네에서 하는 산책이야말로 같이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기도 하겠지만 난 동네에서 하는 산책은 혼자 하는 게 더 낫다 싶다. 친구와는 이따금 시간을 맞추어서 하면 된다는 정도다. 그것은 우선 내 컨디션에 따라서 산책을 나가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거의 규칙적으로 생활을 한다고는 해도 그런데 얽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와 나는 운동량이 다르고 취향이 좀 다르다. 그러니 그녀와 내가 시간을 같이 맞추기보다는 가끔 만나서 산책을 하면 좋겠다 싶은 쪽으로 기울었다.
그 후 어느 날 노트북과 책을 한 권 챙겨서 집을 나서는데 어디 가느냐며 누가 내게 다가섰다. 그래서 지금 커피숍 가는 중이라고 했더니 그럼 같이 가자고 하는 거였다. 그래서 우린 같이 맥도널드로 갔다. 그랬더니 그녀가 커피를 사겠다며 우린 차를 놓고 마주 앉았다. 얘기하다 보니 그녀와는 취향이 더 같았다.
그녀는 혼자서 커피숍도 잘 가지만 이미 브랙퍼스트나 브런치도 밖에 나가서 먹기도, 영화관을 가기도, 물론 쇼핑도 혼자서 잘 다니기도, 고 버스도 타고 다니기도 한다기에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네! 그런 점도 나와 잘 맞는다며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고 했다.
그랬더니 며칠 후 아침에 전화가 왔다. 가까운 데 가서 브랙퍼스트를 먹자는 거였다. 그래서 그럼 같이 나가자고 하며 그녀를 따라 나섰다. 그랬더니 가까운 카페로 나를 안내했다. 나도 그곳은 한두 번 가본 곳이기도 해서 어색하지 않게 안으로 들어서니 그녀가 알아서 커피와 먹을 걸 시켜 왔다.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그 다음은 뭘 할까 싶던 차에, 이미 그녀는 하루 계획을 하고 나왔는지 커피숍에서 나오며 우리 영화나 한 편 보자며 가까운 영화관으로 갔다. 그녀는 영화 표를 두 장 사더니 이번엔 팝콘 두 봉지에 음료수까지 사는 거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완전 내 스타일’이네 싶은 소리가 절로 났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면 팝콘에 콜라는 필수 아이템이 아닌가 싶으니 저절로 신바람이 났다.
나중에 어떤 친구가 영화 제목이 무엇이냐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난 사실 영화 제목에 내용이 뭔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 건 몰라도 되었다. 아니 제목과 내용이야 나중에 궁금하면 인터넷을 찾아봐도 되겠지만 난 그날 너무 감격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그야말로 남자 친구를 만나며 즐길 수 있는 데이트 코스가 아닌가 싶어서다. 그러니 그 순간 영화관에 앉아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장면에 따른 음향효과만으로도 난 충분히 즐거웠다.
우린 그렇게 영화관에서 나와서 이번엔 집으로 가나, 저녁은 어떻게 하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나를 일식집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도 역시 그녀가 주문을 하고 식사비까지 그녀가 다 지불을 했다.
그녀는 그 동안 아들 둘 키우며 살다가 몇 년 동안 남편 병시중을 하며 힘들고 지치기도 해서, 이젠 집에서 뭘 하는 것도 귀찮아 주로 밖에 나가서 음식을 사 먹는다며 이젠 좀 편하게 살고 싶다고 덧붙이는 거였다.
그런데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나만 힘들게 산 것처럼 생각해서 삶의 무게를 더 크게 느끼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는데, 그녀야말로 그런 생각이 더 짙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후 그녀와 몇 번 만나다 보니 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으로 만들어 가끔 그녀를 집으로 부른다. 난 밖에 나가서 먹는 것보다 내가 만들어 먹는 걸 더 맛있게 먹으니, 예전에 남편 딸들과 먹으려 장만하던, 먹고 싶긴 한데 귀찮아 미루던 음식을 찾아내어 부담 없이 편하게 준비한다.
진심인, 겉과 속이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러면서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고 한결같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노년에 만나 건강을 서로 챙겨줄 수 있으면서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으면서, 아름다운, 좋은 관계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고 아끼는 그런 사이로 만들어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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