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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한국 기독교에 새로운 구원을 요구한다

백성호 2020-10-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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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사태로 인해 종교계가 멍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개신교의 상처가 크다. ‘대면 예배 강행’ ‘전광훈 목사의 정치적 행보’ ‘교회 행사를 통한 감염자 확산’ 등으로 수차례 사회적 코너에 몰렸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이정배(65, 전 감리교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 목사를 만났다. 그에게 진단과 처방을 물었다.


 -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개신교가 궁지에 몰렸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뭔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비율이 20~25%쯤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 의식 속에는 ‘기독교 절대주의’ ‘기독교 우월주의’가 강하게 깔려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이 어떻게 나왔겠나. 기독교 위주로 사고하는 습관이 우리 주위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 기독교 절대주의, 그게 왜 문제가 되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근대를 넘어서 탈근대 시민사회가 됐다. 그런데 기독교 절대주의와 우월주의는 이걸 망각하게 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를 중심으로 세상이 도는 것처럼 생각하는 중세적 사고에 머물러 있게 한다.”


 -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개신교 교회들의 현실적 어려움은 뭔가.

 “그동안 대형교회는 대규모 성전 건축을 많이 했다. 대부분 대출을 받아서 빚으로 지었다. 교회가 은행에 빚지고 있는 돈이 몇조 원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헌금이 줄어서 빚을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목사의 생계유지가 어렵다. 그래서 투잡을 뛰는 작은 교회 목사들도 꽤 많다. 대리운전도 하고, 택배 배송도 한다.”

 이 목사는 “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가 확산될 때는 ‘지난주 교회에 다녀온 사람은 우리 가게에 들어오지 마십시오’ 푯말을 붙인 식당까지 등장했다”며 “이럴 때일수록 교회와 예배의 본질적 의미를 짚어봐야 한다. ‘교회’는 원래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ekklesia)’다. ‘흩어진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 교회는 모이는 곳 아닌가. 주일 예배 때 교회는 더 많은 교인을 모으려고 하지 않나.

 “지금까지 그랬다. 어떻게든 교인들을 많이 끌어모으려 했다. 거기에는 교회의 크기로 목사의 크기를 가늠하려는 측면이 있었다. 그 때문에 예배의 본질적 의미가 상당히 왜곡됐다. 예배는 흩어지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지, 모이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 흩어지기 위해서 모인다, 무슨 뜻인가.

 “예배는 주일날 잠시 모였다가 각자의 일상 속으로 잘 흩어지기 위함이다. 각자 발 디딘 일상에서 주일의 정신을 실천하는 거다. 그래서 ‘신앙 생활’보다는 ‘생활 신앙’이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교회는 잘 흩어지는데 신경을 안 썼고, 한 주간 교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신경을 안 썼다. 어떻게 살았든 주일날 교회에 와서 ‘믿습니다’ ‘아멘!’ 하면 죄가 다 사해졌다. 지난 일 주일간 살았던 죄가 다 용서받는 거다. 그 다음 주, 또 그 다음 주도 그랬다. 뜻밖에도 코로나 때문에 지각 변동이 시작됐다.”


 - 어떤 지각변동인가.

 “지금까지는 ‘주일 안 지키면 지옥 간다’ ‘주일 예배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성수주의(聖守主日·주의 날을 거룩히 지킨다) 중심의 기독교였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교인들이 일상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교회 중심주의, 예배 절대주의로부터 사람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성직자에게는 큰 위기이자 도전이다.”

 이 목사는 “다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걸 회복하자고 한다. 나는 그게 더 위험한 생각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코로나로 인해 100만 명 이상이 죽었고, 3000만 명 이상이 감염됐다. 인간이 바벨탑처럼 쌓아온 어마어마한 가치와 이념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경험도 하고 있다. 그걸 체험한 우리가 단순히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코로나는 우리가 쌓아온 잘못된 문명을 고치는 교정자가 돼야 한다.”


 - 잘못된 문명의 교정자, 좀 더 풀어달라.

 “코로나는 인류 문명을 향해 엄정한 ‘뉴 노멀(새로운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새로운 구원’을 요구하는 거다. 교회는 우리 사회에 ‘뉴 노멀’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고, 액션도 취해야 한다. 지금은 그게 교회의 역할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코로나 이전으로 복귀하기만 기다리고 있지 않나. 그건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 백성이 광야를 떠돌며 고생하다가, 이집트 땅에서 고깃국을 먹던 노예 생활을 그리워하는 거랑 똑같다.”


 - 코로나 사태로 요구되는 기독교의 ‘뉴 노멀’은 뭔가.

 “한국 기독교에 요구되는 ‘뉴 노멀’이 있다. 종교개혁을 한 지 500년이 넘었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라고 하는 세 개의 ‘오직’ 교리가 중세를 벗겨냈고, 근대를 열었고, 가톨릭 교회로부터 개신교회를 탄생시켰다. 지금은 이 세 개의 ‘오직’ 교리가 중세의 가톨릭을 타락시켰던 면죄부(가톨릭에서는 죄가 아니라 벌을 감면한다고 해서 ‘면벌부’라고 부름)보다 훨씬 더 타락했다고 본다.”


 -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는 개신교의 정신적 기둥이다. 그게 왜 타락했나.

 “왜냐하면 ‘오직 믿음’이 맘몬주의(황금만능주의)가 돼 버렸다. 교회는 교인들이 일상을 어떻게 살았는지 관심이 없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주님의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믿습니까?’ ‘아멘!’하면 모든 게 용서된다. 자본주의 욕망에 따라서 산 헛된 삶이 ‘오직 믿음’이란 교리에 의해서 면죄부를 받는 거다.

 ‘오직 은총’은 자본주의가 주는 물질적인 축복과 어느새 등가가 돼버렸다. ‘오직 성서’는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절대적 근거로 사용된다. 그런데 성경의 한 구절만 가져와 편협한 잣대로 끼워 맞추는 식이다. 기독교 신앙의 오남용이 너무 심각하다. 이런 기독교는 사실 기독교가 아니다.”

 이 목사는 코로나 사태를 일종의 ‘희년(禧年) 선포’로 해석했다.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 민족은 광야를 떠돌다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땅을 골고루 나누어 가졌다.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평등했다. 

 49년이 흐르자 누구는 땅을 빼앗기고, 누구는 자유를 빼앗겨 노예가 되고, 또 누구는 어마어마한 갑질을 하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자연을 황폐화하고, 사람과 사람 관계도 다 망가져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50년 되는 해에 희년을 선포했다.”


 - 희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땅도 쉬게 하고, 사람도 본래 자기 몫을 찾게 했다. 노예를 해방하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처음에서 시작했다. 예수님도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며 희년 사상을 선포하신 분이다. 코로나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이 어마어마한 희년의 의미를 이제 기독교인이 받아들여야 한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적 원리가 될 뿐이지, 세상을 구하는 ‘뉴 노멀’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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