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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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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기르기

김채형 2023-05-04 0

콩나물 기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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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로 이주하기 위해 짐을 꾸릴 적에 조그만 옹기 시루를 하나 사서 짐 속에 넣었다. 막연히 외국에서 살면 쓸모가 있으리라고 여겼다.  

십수 년 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지난 정월 대보름을 며칠 앞두고 주방의 장 속에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그 시루를 꺼냈다. 다시 보아도 아주 작은 게 앙증맞고 귀여웠다. 이 이쁜 걸 가지고 무얼 할까, 아무리 궁리해도 떡 만드는 건 몰라서 못 하겠고 콩나물이나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콩나물 기르는 것 역시 본 적도 없었다. 어떻게 기르는지 방법을 몰라 인터넷을 뒤져 콩나물 기르기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 했다. 

한국마트에서 무공해 나물 콩을 한 봉지 사다 씻어서 깨끗한 물에 담가놓았다. 하루가 지나자 싹눈이 볼록해지더니 다시 하루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싹눈에서 뾰족한 뿌리가 자라 나왔다.


나는 손자들을 불러 콩에서 자라기 시작한 뿌리를 보게 하고 콩나물 기르는 걸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뿌리가 자라기 시작한 콩을 시루에 옮겨 앉혔다. 먼저 인터넷에서 본 대로 시루 밑바닥에 망사 헝겊을 깔고 그 위에 콩을 살살 펴서 깔았다. 그리고 물을 흠뻑 준 다음 양푼을 받쳐 놓았다. 음식 할 때 쓰던 삼베 헝겊을 물에 푹 적셔 콩 위에 덮고 시루는 검은 비닐봉지를 펴서 덮어 놓았다. 

하루에 세 번씩 시루를 덮은 비닐봉지를 걷고 깨끗한 물을 주었다. 콩나물 싹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쑥쑥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콩나물이 자라는 걸 바라보면서 나도 늙으니 이런 일도 하는구나 싶어 스스로 큰 감동에 취하기도 했다. 


사흘쯤 지났을 적에 다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비록 작은 나물에 불과하지만,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쑥쑥 자라는 모습에 놀랍다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때마침 방문한 아시아계인 이웃이 보고는 콩나물을 아는 듯 대뜸 맛있게 생겼다고 했다. 아직 연하디연한 어린싹을 보고 맛있게 생겼다는 표현이 나는 왠지 생경하게 느껴졌다. 먹기 위해 재배하는 게 당연함에도 먹기 위해 생명을 주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어린 콩나물 싹에서 느껴지는 신비한 생명의 힘으로 인해 왠지 함부로 대하면 안 될 거 같은 경외심마저 생겼다. 


하지만 이 콩나물을 언제까지나 자라도록 둘 수는 없었다. 그것 또한 그것 나름대로 갖고 태어난 사명과 운명이 있는 것이니까. 적당한 때가 되면 맛있는 음식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마침내는 분해되어 우리 몸을 위한 영양소가 되어야 비로소 그것의 사명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정월 대보름을 하루 앞둔 열나흗날 나는 정성 들여 키운 콩나물을 수확했다. 오곡밥을 하고 콩나물을 포함한 아홉 가지 나물을 만들었다. 특별히 수확한 콩나물 중에서 반은 국을 끓였다. 정월 대보름 음식으로는 맞지 않았지만, 콩나물로 만들 수 있는 음식 중 대표 격인 콩나물국을 빼놓을 수 없었다. 


국에는 별 양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콩나물에 소금 간을 하고 파와 마늘을 넣었을 뿐이었다. 콩나물국의 그 환상적인 맛을 뭐라고 표현할까, 바로 그 맛이었다. 어릴 적 이른 아침에 콩나물 동이를 머리에 이고 동네를 돌며 ‘콩나물 사세요!’하고 외치던 아주머니한테 사서 국을 끓여 먹던 맛. 마트에서 산 콩나물로는 절대로 낼 수 없는 맛. 아마도 무공해 콩을 사서 무공해로 길렀기 때문인 거 같았다. 


는 한국의 고유 명절을 모르는 손자들에게 정월 대보름의 유래를 간단히 설명하고 이날 먹는 음식의 의미에 관해서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에 콩나물국을 곁들여 먹으면서 함께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해 보았다. 기르는 과정을 지켜본 손자들도 내가 키운 콩나물로 끓인 국이 아주 맛있다고 엄지척을 해 보였다. 


설거지를 마치고 낮에 찍어 놓은 수확한 콩나물 사진을 카톡에 올려 자랑했다.

언니한테 가장 먼저 반응이 왔다. 

‘장하네, 콩나물도 기르고. 나는 도무지 그런 걸 할 줄 몰라서 못 해.’ 

언니가 어릴 적부터 활동적인 성격이어서 정적인 일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뜻밖이었다. 살림하는 건 오히려 나보다 고수였기 때문이었다. 

여러 지인이 자신들도 콩나물 기르기를 시도해 보았노라고 했는데 성공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싹이 나오지 않았다는 경우도 있었고, 싹은 나왔는데 자라는 도중에 모두 썩어버렸다고 한 친구도 있었다.


나는 한 번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했다. 내가 생각해도 콩나물을 길렀다는 건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 해 본 일이어서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이 여겨졌다. 

이것이 단순히 콩나물을 길렀다는 사실 때문일까, 이걸 농사라고 표현하기에는 과장이 심하고, 어쩌면 이 기쁨은 새 생명을 주는 일에 성공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먹거리일지라도 생명을 주고 키우는 건 엄숙한 우주의 신비에 참여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잠자기 전에 남은 콩을 마저 물에 담갔다. 나는 다시 한번 우리의 음식이 되기 위해 시작될 콩나물의 한 생과 사명(?)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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