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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칼럼

틈, 생명의 숨구멍

장성훈 2025-01-23 0

목이 말라서 두유를 마시려고 컵에 따랐습니다. 뚜껑을 열고 음료통을 기울였는데 너무 많이 기울였는지 두유가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때문에 컵 주변으로 튀어 나가는 두유들도 있었고 바닥 여기 저기에 자국도 생겼습니다. 깜짝 놀라서 통을 들어 올리고 조금만 기울어지게 했더니 입구의 절반 정도의 두께로 두유가 안정적으로 나왔습니다. 음료통 안으로 공기가 들어갈 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보도블록 틈새나 돌 틈, 심지어 콘크리트에 난 틈새 구멍으로도 고개를 내미는 풀들과 민들레 생각이 났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면 쭈그리고 앉아서 퉁퉁거리면서 뽑아낼 때는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그 녀석들이 미웠는데 오늘 두유를 따르다 생각해 보니 미워할 녀석들이 아니었습니다.


해마다 고개를 내밀지만 여지없이 뽑혀 나가기 십상이었던 이름도 잘 모르는 풀들이었지만, 그들은 자기 이름을 알리는 대신 큰 메시지를 전하고 간 하늘 메신저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풀들과 민들레를 뽑아 버리기에 급급했던 내가 이제 그 메시지를 겨우 들은 어린 귀를 가진 둔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풀의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틈은 생명의 숨구멍이다.’ 공기가 들어갈 틈을 내어 주자 음료를 안정적이고 제대로 따를 수 있게 되었고, 콘크리트 길이 갈라진 틈을 내어 주자 초록이 피어나고, 차갑고 두터운 바닥에 틈이 나자 희망의 빛이 스며들어 꽃으로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틈은 생명이 깃들고,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이어주는 신비의 장소였습니다.


틈을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틈을 내주지 않아야 한다고 배우는 세상입니다. 틈은 무너지게 하는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메우고 가리고 덮어서 틈이 없는 듯 행세해야 나를 지킬 수 있고 안전하다고 믿게 하는 세상입니다. 무결해야 완전하고 틈이 없어야 완성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허술함과 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더 많이 애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네요. 소풍 가서 수건 돌리기를 하다가 술래에게 잡히지 않고 사는 길은 누군가 비집고 들어와서 차지하도록 내 옆에 자그마한 공간을 마련해 줄 때입니다. 그러고 보니 닫혀 있지 않고 사방에 깃들 수 있는 틈 투성이 공간을 우리는 LIVING ROOM이라고 하는 군요. 그렇게 사방에서 들어와 앉을 수 있는 곳을 삶과 생명의 공간이라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틈새 많고 허술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곁에 자리를 잡으시고 우리를 품어 주셨습니다. 자기를 비워서 틈새 많은 우리 같은 존재가 되셔서 그 틈으로 우리를 받아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 예수님을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립보서 2장7절)고 말합니다.


틈을 내어 주면 생명이 숨 쉴 수 있고, 틈을 내어 주면 살릴 수 있습니다. 완벽한 체 온전한 체 뛰어난 체 하지 않고 새해에는 끼어들고 스며들 틈이 보이는 따뜻한 사람, 틈을 내어 주는 살리는 사람이 되어 보기로 마음 먹어보면 어떨까요? 기대고 스며들 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틈을 내어 주신 그 분을 닮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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