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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제부터 시진핑까지...목표는 오직 군사력 증강

김호동 2021-01-21 0

  중국은 2013년 11월 중국공산당 전체회의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국가전략으로 채택했다. ‘일대’는 하나의 벨트(띠)라는 뜻으로 유라시아 내륙을 통과했던 육상 실크로드이고, ‘일로’는 하나의 길이라는 뜻으로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해상 실크로드다. 다시 말해 중국은 실크로드를 21세기의 대명제로 선언한 셈이다.


 흔히 사람들은 “역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답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크로드라는 멋진 역사적 개념을 국가전략 명칭으로 채택하다니…. 그런데 중국과 실크로드의 역사적 관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이 같은 첫인상은 순진한 착각일 수도 있다.


 실크로드는 근대 이전의 세계사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를 이어주는 교통과 교역의 루트를 일컫는 역사적인 용어다. 이 루트를 통해서 여러 지역의 문물이 교환되고 어우러지면서 동서 문명이 합류했다. ‘로마에서 장안(長安현재의 시안)까지’라는 표현이 실크로드를 상징하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실크로드의 주역은 유럽도 중국도 아니었다. 중앙 유라시아의 오아시스 도시에 살던 소그드인과 위구르인이 실크로드를 오가며 교역했던 당사자였고, 그들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보호해준 이들은 초원의 유목민이었다. 중국 상인이 실크로드를 거쳐 멀리 무역을 하러 갔던 사례는 매우 찾기 어렵다. 그러니 오늘날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를 명분으로 내걸고 실크로드를 좌우했던 당사자인 양 나서는 것은 상당히 어색한 일이다.


유구히 내려온 ‘실크로드 제국주의’  

 일대일로 정책이 실크로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드높이자는 문화적인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오히려 그것은 관련된 지역에 위치한 수많은 국가를 대상으로 기반시설 건설, 개발과 투자, 자본 대여 등을 통한 경제적 협력 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유라시아·아프리카·인도양 지역의 저개발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데 있다.


 물론 시진핑 주석이 공들여 준비하고 국가전략으로까지 승화시킨 일대일로의 궁극적인 목표가 그러한 경제적 측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듯하다. 차라리 그것은 21세기를 맞아 중국의 보다 거대한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즉 소련이 무너지고 미국의 주도권이 흔들리는 시점에서 중국의 패권을 확립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중국과 실크로드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저의를 보다 명확하게 간파할 수 있다. 과거에 어떤 왕조가 건립돼 그 기반이 확고해지면 거의 예외 없이 실크로드로의 진출이 시도됐다. 오늘날 중국은 소위 ‘대국굴기’의 일대 번영기를 맞고 있다. 후일 역사학자들은 시진핑 시대를 한 무제나 당 태종의 치세와 비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시대에 추진된 대외 진출은 거의 항상 통상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치·군사적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몇 가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무제 때에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실크로드로의 진출이 이뤄졌다. 당시 중국 사신들이나 군대가 서역으로 갔던 이유는 물자를 확보하거나 교역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북방 변경을 위협하던 흉노라는 세력과 전쟁을 벌이기 전에 그 ‘오른팔’을 끊어버리기 위해서였다. 


  한 무제는 기원전 129년부터 기원전 89년까지 무려 40년에 걸쳐 왕조의 명운을 건 길고 긴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흉노를 꺾지 못한 채 전쟁을 종결해야 했다.


 당나라가 들어선 뒤 중국은 다시 한번 실크로드로 진출했다. 당 태종은 630년 신장(新疆) 초입에 위치한 하미라는 도시를 점령하여 서역으로 들어가는 문호를 장악했다. 639년에는 투르판을 정복하고 톈산산맥의 남북을 모두 통제할 수 있게 됐다. 태종이 서역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모한 것 역시 북방의 유목민을 제어하기 위함이었다. 즉 그들의 후방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서역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만주족이 건설한 청나라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관찰된다. 청조는 강희에서 건륭에 이르는 3인의 황제의 시대(1661~1796)에 황금기를 맞이했다. 건륭제는 서역 정복을 완성했고, 그곳은 ‘신장(새로운 강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이 역시 몽골 초원을 호령하던 준가르라는 유목세력과 대결하여 그들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거의 1세기 반에 이르는 이 시대의 군사적 성공은 몽골리아와 신장과 티베트를 청 제국의 판도로 만들었고, 그 대부분이 고스란히 유산으로 넘겨져 현대 중국의 기원이 됐다.


 중국의 왕조들이 실크로드로 진출한 경우를 보면 그 동기와 목적은 항상 군사적인 데에 있었다. 통상과 교역을 목적으로 상인을 보내거나, 그들의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아니면 중국의 교역권을 확장하기 위해 서방으로 진출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항상 ‘땅은 크고 물자는 많다’고 생각해왔고, 그 밑바탕에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 이념이 깔려 있었다. 즉 중국의 실크로드 진출은 역사적으로 중화제국에 위협이 되는 주변 세력을 통제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패권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것이니 가위 ‘실크로드 제국주의’라 부를 만하다.


중국 동향 주시하며 대응책 마련해야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정책을 보면 물론 과거와 같이 노골적으로 군사적인 방법이 동원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양강 구도가 무너진 뒤 21세기에 중국을 새로운 패권국가로 끌어올리려는 세계전략의 일환임은 의심할 수 없다. 중국은 역사적 사실과 달리 자신이 실크로드의 주역이었던 것처럼 자처하면서, 현재 도모하고 있는 활동의 목적이 경제·문화적 교류와 협력에 국한된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대일로라는 전략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이 실크로드로 눈을 돌릴 때는 거의 항상 동방으로도 손길을 뻗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 무제 때에 한사군이 설치됐고, 당 태종 때 고구려와 백제가 무너졌다. 또 청대에 들어와선 중국에 대한 조선의 복속이 한층 강화됐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일대일로라는 것도 우리와 전혀 무관한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없는 이유다. 중국의 새로운 세계전략 추이를 주시하면서 대응책을 고심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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