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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주는 행복

한순자 2023-04-13 0

햇살이 주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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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분을 가장 많이 좌우하는 요인은 날씨가 아닐까 한다. 그 날의 날씨에 따라서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춤을 추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 성격이 변덕스럽게 왔다 갔다 하지는 않지만 덤덤했던 기분이 해가 나는 날엔 어느 사이 달콤한 행복감에 젖어 든다. 


 난 어린 시절부터도 햇살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지금도 아련히 떠오르는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엔, 해가 마루 끝자락에 내려앉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은 참 감미로웠다. 그것은 라디오 방송보다는, 하루해가 지기 전에 햇살이 남은 그 시간대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꿈꾸어 왔던 것 중 하나가 이다음에 결혼해서 사모님이 되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잔디가 있는 정원에서 햇빛이 비추이는 곳, 파라솔이 있는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런 염원이 담긴 소망 때문이었을까.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해 촌뜨기인 내가 매일 학교에 다니는 일이 꽤나 고달팠다. 그렇긴 했어도 그때도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넘어가는 해가 마루 끄트러미에 남아 있었다. 그 시간엔 피곤함이 밀려와 낮잠이라도 자고 싶기도 하건만, 그 시간에 잠을 자버리기 아까워 한복을 입고 밥상 위에 책을 펴고 앉아 있다가 스르륵 잠이 들기도 했었다. 그때 입었던 한복은 고등학교를 갓 입학해서 개교기념일에 무용을 하기로 돼 있어 단체로 한복을 맞췄다. 


 그렇게도 햇빛을 좋아하기도 했건만 그 후 결혼 후엔 살림하며 아이들 키우느라 무디기도 했었던지 햇빛에 대해 잊고 살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세 번째로 이사를 했던 콘도에서 좋아하던 햇살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콘도 9층에 살았는데 앞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있으면서 강을 낀 공원이 바라보이는 환상적인 환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해 그곳에서 글감이 쏟아졌다. 언제든 주방에서도 밖이 내다보여 음식을 하다가도 내다 보고, 창가에 붙여 놓은 식탁에 앉으면 마치도 시골에서 들판에 앉아 들 밥을 먹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밤엔 침대에 누우면 둥그런 달은 어린 시절 친구들이 놀러 온 듯한 친밀감이 들기도 했으니, 그런 자연환경을 마주할 수 있어 꿈처럼 행복했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서는 1년밖에 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러다가 남편, 딸 둘과 개 7마리와 같이 살게 되었던 집 역시 거실과 침실에 햇빛이 넘치도록 들어오는 곳이어서 다른 욕심도 불만, 불평도 할 수 없이 참으로 행복했었다. 

 지금도 작은딸과 같이 살고 있는 집 역시 주방과 내가 거처하고 있는 침실이 남향이어서 해가 좋은 날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행복한 갈등’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며칠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든가, 바람이 불기도 하니 해를 구경하기 어려워 이러다가 우울증에 걸리겠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출 때면 산책을 나갈까, 드라이브를 할까, 커피 샵으로 갈까, 아니면 햇살 받으며 음악을 들을까 행복한 고민을 한다. 그 행복한 갈등도 다른 일이 없을 때나 할 수 있다. 대체로 다른 약속이 없어도 한 주간의 일기예보는 미리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일기예보에 해가 나는 날이었다. 마침 김치를 하느라 서둘렀건만 예상했던 시간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햇살이 가득한 주방에서 부지런히 하느라 했건만 그런 날은 김치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가 너무 아까웠다.   


 햇살을 즐기는 것도 시간대별로 느낌이 다 다르니 어쩌랴. 대체로 오전의 햇빛은 감미로움을 느낄 수 있긴 하지만,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은 덜 하다. 그러다가 오후 1시 좀 넘어서면 내겐 그 시간이 산책하기 딱 좋은 시간대다. 물론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겨울과 여름의 시간대가 다르다.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는 해가 기우는 쓸쓸함이 싫어 커피 샵을 가더라도 4시 전엔 가야 차를 마시는 기분도 극대화할 수가 있다. 이렇게 햇살 좋은 날 김치하느라 시간을 다 허비할 수도 없어 대충 미뤄 놓고 맥도널드로 달려갔건만 4시가 다 되어있었다. 


 사실 난 커피는 썩 좋아하지는 않기에 가끔은 그래서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서둘러 갔건만 이미 그 시간엔 따사로운 햇살은 즐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어폰을 꽂고 ‘추억의 트로트’를 들으며 아이스크림을 맛나게 먹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흔히들 명품 핸드백, 보석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난 별로 관심이 없기도, 그런 것들을 샀을 때는 괜찮네, 좋네 하는 마음은 있지만, 행복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햇빛이 나는 날엔 언제든 감미롭고 포근한 행복감에 젖어 들 수 있어, 사실은 난 언제 세상을 떠난다 해도 아쉬울 것도 없지만, 햇빛이 주는 감미로움, ‘최고의 행복감’을 맛볼 수 없겠지, 그게 가장 그립고 아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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