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고민 > 오피니언

본문 바로가기
토론토 중앙일보
국제 Pen 문학산책

행복한 고민

한순자 2025-07-18 0

신록의 계절을 지나 어느덧 여름의 절정에 와 있다. 나뭇잎은 푸르고 숲이 우거지니 어린 시절의 정서에 젖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어린 시절 우리 집 가까이 야산이 있어 난 학교에 갔다 오면 개를 데리고 그 산을 오르기를 잘했다. 그 시절에 키우던 메리를 데리고 같이 산에 오르니 무섭지 않고 재미있게 산을 오르곤 했다. 

뒷동산 산등성이에 오르면 거기 앉아 한바탕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뒷동산은 시험 때 더 자주 찾곤 했다. 그즈음 산소가 머리에 좋다는 얘기는 들어서 책을 들고 산에 올라 나무 밑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 시절 산에 오르는 재미는 동네에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거기서 흘러나오는 유행가가 그렇게 감미로울 수가 없었다. 그 시절엔 라디오도 흔하지 않았으니 가설극장이 들어오는 때 들을 수 있는 유행가는 너무도 달콤했다. 산에 올랐다가 집으로 향하는 그 시간대엔 땅거미 질 무렵 뽀오얀 신작로 길을 나뭇가지 하나 꺾어 들고 가설극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던 그때의 감성은 평생 가슴 속에 자작자작 고여 있다. 

그런 정서에 젖어 살다가 고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오니 삭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혼자서 어디 편하고 조용하게 걸을만한 장소가 없었다. 집들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고 차들은 많고 동네 어디를 가나 앉을만한 의자 하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것은 고등학교 친구 몇 명과 같이 북한산 관악산 소요산 설악산 계룡산 등으로 등산을 가기도, 여름이면 피서 여행을 갔던 기억은 그래서도 참으로 소중하다. 

그 후로는 결혼을 해서 아이들 낳고 키우느라 자연에 대한 갈증도 갈망도 없이 세월은 흘러갔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멀리 나가지 않으면 자연을 접할 수 없었으니 그런 데 무심하게도 살아왔다. 

그러다가 1990년 도에 답사차 캐나다에 와서 보니 난 한눈에 자연에 매료됐다. 그야말로 넓고 푸르른 자연, 곳곳에 쾌적한 공원이 눈에 삼삼했다. 결국 우린 이민을 결정하고 캐나다로 오는 것에 망설이지 않았다. 

어느덧 캐나다 생활 33년 차를 살고 있다. 그동안은 이사를 할 때마다 우선 주변에 내가 즐겨 찾을 수 있는 공원이 있는지 살피곤 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의 환경도 나쁘지 않았지만, 2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온 나는 이런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에 날마다 행복한 고민을 하곤 한다. 

처음 고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서 갈 데가 없어 허전하고 삭막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갈 곳, 가고 싶은 곳이 넘쳐난다.

요즈음은 느즉하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TV로 뉴스를 보는 것으로 아침을 연다. 서두를 것도 없이 여유 있게 그리고 맛있게 밥을 먹는 그 시간엔 오전 햇살이 집안에 가득 드니 따스한 행복감에 젖는다. 

어제는 아침을 먹고 그다음 과일을 먹으며 소파에 앉아 TV를 볼까 하다가 밖을 보니 햇살도 좋아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곳은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이라도 읽으면 최상의 기분이 될 것 같았다. 그 시간에 집에 있으면 TV를 보다가 솔솔 잠이 오면 낮잠을 즐길 그런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그래서 책과 과일 이어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벤치에 앉으니 맑은 날씨에 바람도 살랑살랑 최고의 순간이었다. 난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에서 음악을 틀었다. 이 순간 더이상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희열이 넘쳐 흘렀다. 

그렇게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어디 그곳뿐인가. 

그 시간엔 집에 있어도 좋고, 집 앞뒤로 가서 즐길 수 있는 공원 벤치에, 또 주변에 걸으면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는 공원도 널려 있고 무엇보다 도서관이 있으니 이럴 수가 있나! 그야말로 행복한 감정이 넘쳐 흐른다. 

난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그토록 풍요롭게 살았다 싶건만 그래도 전원생활보다는 도시가 더 좋다. 도심에서 사람 속에 파묻혀 살다가 전원엔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내 노년에 맞고 있는 내 환경은 그야말로 ‘도시와 전원생활’을 유감없이 즐길 수 있는 여건으로 갖춰져 이렇게 만들어 찾아오기도 쉽지 않겠다 싶으니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 넘친다. 

난 머릿속에 각인된 나의 모습이 있다. 그것은 넓은 정원에 파라솔이 있는 하얀 테이블에 한복을 곱게 입고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이다. 정원 곳곳에 설치해 놓은 스피커에서는 감미롭고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상상만으로도 그런 감상에 젖을 수 있어 참 좋다. 

그런데 내가 그리던 그 환경 이상으로 주어지는 환경에 어린 시절부터 가슴 속에 묻어 둔 ‘씨앗’이 결실을 맺는 것인가 경이로운 마음마저 든다. 

요즈음 내가 즐겨 찾는 곳은 공원묘지 안에 꽃동산이다. 묘비가 있는 작은 꽃동산엔 백일홍 금잔화 베고니아 몇 종류의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는 곳이다. 벤치로 되어 있는 의자도 4개나 놓여 있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와서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 싶건만 거의 언제나 꽃동산은 나 혼자일 때가 대부분이다. 묘지의 주인공은 어떤 삶을 살다간 사람이었을까 말을 걸어 보고픈 심정이다. 

어린 시절 야산을 오를 때나 신작로를 따라서 걸을 때면 문득문득 매미의 울음소리, 미루나무 흔들리는 바람 소리만이 적막감을 깨우네 싶은 감정이 스칠 때가 있었다. 

그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도심 속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조용하고도 편안한 감정에 젖을 수 있어 그래서 참 좋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오피니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