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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수진의 영화 이야기

호공부

수진 2021-11-25 0

'중국무술의 무서움' 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퍼진 글이다. 비록 중국에 대한 비하적 선입견에서 비롯된 우스갯소리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본래 군인들이 훈련하던 병기술에 기반하고 무기 훈련에 앞서 하던 준비운동으로서 발전하기 시작한 중국무술은 봉, 창, 칼 등의 무기를 다룰 때 비로소 진가가 드러난다고 한다. 


이소룡을 필두로 한 카메라용 쿵푸와 소림무술 등 현대인에게는 현란한 몸놀림을 통해 화려함을 선보이는 중국 '무술' 이 익숙하다. 2015년 개봉한 '사부 : 영춘권 마스터 (원제 사부, 이하 사부)' 는 이런 현대 영화에서 보여지는 중국무술과 정반대의 액션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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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영춘권을 전승받았으나 악재가 겹쳐 가문은 몰락하고, 살아남기 위해 온갖 일을 한 뒤 가문과 문파의 재건을 위해 천진으로 온 진 사부. 자신의 도장을 세우려면 8개의 도장을 격파하고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음험한 천진 무술계는 다른 도장들을 격파한 도전자를 천진에서 내쫓는다. 


이런 모순적인 법칙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 와중 먼저 천진에 정착해 있던 친분 있는 정 사부에게서 조언을 받은 그는 편법을 생각해 낸다. 바로 제자를 길러 대신 도장들을 대신 격파하게 하는 것.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하고 야망을 숨기기 위해 아름다운 가게 여종업원 조국훼와 계약결혼을 한 진 사부. 시내에서 아내를 희롱하려고 하던 불량배 여럿을 단신으로 격파하는 모습과 그렇게 사람이 꼬일 정도를 가진 미모의 진 부인에게 관심이 생긴 젊은 인력거꾼 경량진은 진 사부에게 대련을 신청하고 그에게서 잠재력을 본 진 사부는 새 제자를 들이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엿한 무도가로 성장한 경량진은 진 사부의 계획대로 천진의 도장들을 격파해 나가기 시작한다.


비록 단순한 줄거리 대신 액션을 무기 삼는 영화지만 '사부' 의 스토리에는 건조한 매력이 있다. 천진의 무술계는 화기가 주가 된 현대의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의 상처로 인해 위축되어 점점 설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되는, 그러면서도 살아남아 존속하기 위해 군부 그리고 급변하는 중국 정세와 타협하며 독해져 가는 천진 무술계의 모습은 마치 식민시대 이후 옛 세계 열강으로서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근대 중국의 모습을 보는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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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폭풍 속에서도 실리를 취하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정 사부 등의 존재가 무술과 낭만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알리는 것 같아 영화의 가라앉은 분위기에 무거움을 더한다. 


한결같이 불같은 성격의 경량진, 그리고 냉소적이고 무심한 듯 행동하지만 결국엔 사랑으로 인해 바삐 뛰게 되는 진 사부와 조국훼 등의 캐릭터 역시 영화의 흐름과 잘 어울린다. 


명예와 미래에 절박한 사람들이 물러설 곳 없이 충돌하지만 쓸데없이 과장된 분위기나 노래 등을 통해 억지로 사람의 감정을 이끌려 하지 않는 '사부' 의 건조한 분위기는 오히려 마지막 절정에서 절박한 인물들의 묘사를 더 극적으로 끌어낸다.


'정통 무협' 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구로 국내에서 광고된 영화 '사부' 는 오히려 우리에게 친숙한 중국영화들과는 다른 액션을 선보인다. 절도있는 동작과 카메라 움직임, 그리고 무엇보다 무기의 존재가 '사부' 의 액션을 돋보이게 한다. 


남부 무술을 대표해 등장한, 단검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영춘권, 그리고 그에 대적하는 북부 무술과 창, 칼, 대검 등의 다채로운 무기들의 대결은 다채롭고 그 흐름이 예상되지 않는다. 


주먹이나 발차기 대신 흉과 치명상을 남길 수 있는 날붙이들의 대결이라는 사실이 실감되는 순간 고조되는 긴장감이 몰입을 돕는다. 


손잡이를 걸쳐 제압하는 등 무기들의 형태를 최대한 이용해 교묘한 기술을 보이거나 근접전을 위해 대검을 크게 휘두르는 대신 칼등을 잡고 밀어붙이듯 후리는 등 환경에 맞춰 바뀌는 무기들의 변화무쌍한 모습 역시 구경하는 즐거움을 더한다. 암수나 린치 등 비겁한 술수에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승패가 결정되자 패배를 인정하고 '좋은 무술이요' 하며 무기를 교환하는 무술가들의 모습에는 낭만이 있다. 


'칼 든 사람을 상대로 가장 좋은 호신술은 도망치기'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실제로 흉기의 위력은 대단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길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여야 하는 액션영화 등의 매체에선 잘 등장하지 않거나 주인공의 강력함을 띄워주기 위한 장치로 전락하는 경우가 잦다. 


'사부: 영춘권 마스터' 는 그런 생소하다면 생소할 수 있는 소재를 십분 활용해 좋은 공부(功夫) 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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