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로저스센터에서 토론토와 뉴욕 양키즈와의 야구경기가 열렸습니다. 0-1로 뒤지고 있던 뉴욕의 타자로 나선 애론 저지(Aaron Judge)가 솔로 홈런을 쳐냅니다. 외야 깊숙이 날아간 홈런볼은 관중석에 있던 한 토론토 팬에 의해서 낚아채졌습니다. 홈런볼을 잡아서 기분이 좋아진 마이클 란질로타(Michael Lanzillotta)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려 기쁨을 만끽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란질로타는 양키즈의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쓴 작은 소년이 자기 눈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하늘을 향해서 뻗어 오르던 손이 내려졌고 그는 그 공을 양키즈 어린이 팬에게 넘겨줍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던 소년은 란질로타를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아 냅니다.
재미있게도 그날 소년이 입고 온 양키즈 유니폼에 적힌 이름이 애론 저지였습니다. 애론이 친 홈런 볼을 애론의 이름이 적힌 옷을 입은 소년이 가지게 된 것이지요. 소년의 이름은 데릭 로드리게스(Derek Rodriguez)였는데 소년의 아버지가 대단한 양키즈 팬이어서 양키즈의 또 한 명의 영웅인 데릭 지터(Derek Jeter)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쉽게 가질 수 없는 홈런볼을 갖게 된 기쁨을 만끽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그 공을 가져가도 될 터인데 기쁨을 홀로 차지 하지 않고 눈앞의 어린이에게, 그것도 상대편을 응원하는 어린이에게 선뜻 공을 내 준 란질로타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 중에 <룻기>가 있습니다. 고향 땅에 흉년이 들어 이웃 나라로 이주하여 살았던 한 가정에 닥쳤던 불행과 아픔이 따뜻한 나눔과 책임을 다하는 돌봄을 통해서 회복되고 미래를 향한 기대감으로 가득하게 되는 퍽 아름답고 참 포근한 이야기입니다.
이주한 이웃나라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시어머니와 며느리 나오미와 룻은 추수밭에서 이삭을 주워야 겨우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보아스는 곡식단을 부러 흘려 두도록 일꾼들에게 몰래 당부합니다. 룻은 허리를 숙이고 부지런히 이삭을 주워 어머니와 자신의 밥상을 차립니다.
농부의 수고가 기쁨이 되는 추수의 즐거움에 눈물 가득한 나오미와 룻이 함께 할 수 있게 한 보아스의 관대함은 참된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풍성함은 내 창고에 곡식이 가득해지고 그 창고문을 단단히 잠글 때가 아니라 내 잔치상에 누군가를 함께 앉힐 때 누릴 수 있습니다.
란질로타는 기회처럼 날아온 홈런볼을 자기 호주머니에 품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공을 집안 잘보이는 곳에 두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호기롭게 자랑하며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평생의 이야기거리로 삼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날아온 공을 낚아채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공을 가질 권리를 갖지 못한 작은 소년팬 데릭에게 그 공을 넘겨 주었습니다. 그 일은 마이클도 데릭도, 그 모습을 보고 들은 모든 사람들도 기쁨의 샘물을 함께 마시게 해 주었습니다.
그에게서 봄 아지랑이같이 따뜻하고 말랑한 마음이 보였고 주변을 살필 줄 알고 헤아릴 줄 아는 선한 심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자격 없는 우리에게 은혜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식탁에 자리를 내 주신 그 분의 사랑이 피어올랐습니다.
홈런볼을 내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가서 만들어낼 이야기와 홈런볼을 내주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 만들어질 이야기. 내가 만들어가고 참여할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를 평펑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며 생각해 보게 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