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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참뜻

정충모 2021-10-13 0

훈민정음의 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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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편찬(언문)은 조선 4대 세종대왕 때, 집현전 학자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신숙주 등에 의해 만들어 졌다. 그것이 반석(盤石)이 되어 한글 학자들이 면면이 다듬고 개조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한글을 이야기하면 먼저 이를 만든 세종대왕이 떠오르고, 이에 반대한 최만리가 연상된다. 최만리가 반대를 한 이유부터 알아보자. 훈민정음 창제 기사 세종 25년 계해년(癸亥年)에 조정 신료(臣僚)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을 하였다. “신 등이 엎드려 보옵건대, 우리 조선은 조정(祖宗) 때부터 중국을 지성스럽게 대국을 섬기어 중화(中華)의 제도를 따라 행하여 글을 같이하고 법도를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때 언문을 창작하신 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을 뿐만 안이라 대국을 섬기는데 있어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오니, 다시금 성재(聖裁)하시옵기를 바랍니다.”


최만리는 공손히 임금의 지혜를 높이 평가하는 예를 갖추었으나, 그 속내는 사대주위 사상이 매섭게 뿌리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주동이 되어 상소를 올렸던 재상들, 응교(應敎) 정창손. 부교리(副校理) 하위지 부수찬(副修撰) 송처검(宋處儉), 저작랑(著作郞) 조근(趙瑾)등, 그 밖에 여러 대신들! <조선왕조실록>


하지만 세종 임금께서는 백성을 우선시 하시고 사랑하셨기에 군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늘날 쉬운 한글을 배우게 하였던 것이다. 그 후 세종대왕이 승하하시며 여러 대를 거쳐 임금들이 언문을 가르치는 데 중지(衆智)를 모았지만,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 선조에 이르러 시조의 대가(大家) 정철이 “사미인곡”을 언문으로 편찬하면서 한글이 활기를 찾게 된 것이다.


정철의 사미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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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 몸 삼기실 제 임을 쫓아 삼기시니/ 한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젊어 있고 임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 노여 없다./ 평생에 원하오되 한데예자 하였더니/ 늙거야 무슨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엊그제 임을 뫼셔 광한전에 올랐더니 /그 덧에 어찌하여 하계에 내려오니./ 올 적에 빗은 머리 흩으런지 삼년일세./ 연지분 있네마는 눌 위하여 고이할고. <조선왕조실록>


이렇듯 사미인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말이 아름다운 비단결처럼 짜여있고, 속미인곡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문 깊은 뜻에 식상되어있는 집현전 학자들에겐 당시에 언문이 수긍이 안 가는 것은 당연했고, “동초” 역시 시조풀이를 하면서 문체가 어색함을 떨치질 못했다.


또 한 해의 한글날(10월9일)이 돌아왔다. 한글날은 공휴일이 너무 많아 경제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1991년 한글날과. 국군의 날을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안전행정부’의 입법개정을 하여, 2013년부터 다시 공휴일로 지정한 걸로 안다. 어느 나라고 국가가 부강하려면 그 나라 문화. 경제 사회가 앞서야 발전이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인데, 나라의 근간이 되는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제외시킨 것은 백번 양보해도 졸속 행정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한글 학자들 숫한 경랑을 겪으면서 억센 중국의 한문에서 탈피하며 우리의 한글을 살리려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 세계인이 부러워하는(한글) 과학적이고, 진화된 문자를 창조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글이 문명 횡포에 빛을 잃고 있으니 실로 서글픔을 금할 수가 없다.


이제는 맹목적 외국에만 의존했던 방향을 내국으로 돌려야 한다. 꼭 글뿐만 안이다. 우리의 숨결, 정신이 담겨있는 우리의 의 모든 풍속이 재조명되어야 마땅하다. 현대화, 서구화라는 조류에 휘말려 상실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문화를 회복하는 일은 바로 우리의 정책성 확립이다. 물론 복합문화 속에 살며 그 나라 글과 문화의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문화와 글을 배우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의 글은 그 나라의 젖줄이고 생명 같은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문화와 글이 백년대개로 가르쳐도 끝이 없는데, 급속히 발전하는 인터넷 등장으로 갈팡질팡 하고 있어 선조들 보기가 부끄럽다.


국제팬 캐나다 문학 산책 동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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