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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홍성자 수필집

희 비 喜悲

홍성자 2021-03-04 0

한국식품점엘 갔다. 일하는 여자 분이

“어제는 일 끝나고 밖에 나가니 날씨가 너무 좋아 미칠 뻔 했어요.” 

“그래요, 너무 좋지요?” 

그렇다,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다. 정말 가슴이 터지고 미칠 정도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Blue 그 자체다. 


토론토에 연착한 봄은 이른 비로 대지를 촉촉이 적시더니, 5월 하순 날씨가 며칠간 좋던 중 또 늦은 비가 풍성히 내렸다. 

눈이 계속 많이 오고 유난히 춥고 길었던 지난겨울이 아니었든가, 찬란한 이 봄을 기다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6월 중순경부터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나는데 아름답기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보는 것마다 가는 곳마다 탄성이다. 

동네 어딜 가도 꽃 잔치다. 튜울립 개나리 수선화 목련이 지면서, 꽃 빨강 애기 사과 꽃이 장관을 이루더니, 라일락, 흰색의 싸리 꽃들이 뭉게구름을 이루었다. 동네 집집마다 현관 앞에는 애기 얼굴만 한 목단 꽃송이들이 이슬에 젖어 무거워 얼굴을 들지 못한다. 주황색의 양귀비꽃들은 내 얼굴만 하다. 내가 좋아하는 별꽃들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넋을 잃게 한다. 만나는 이들마다 온통 꽃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겨우내 기다리던 꽃들과 초록세상이 되었는데,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하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꽃이 피어도 슬프고 날씨가 너무 좋아도 슬프던 때가 있었다. 꽃은 왜 피어나며, 날씨는 뭐 때문에 이리 좋은가? 겨울은 겨울이라서 그렇다 친다지만 봄이 되니 오히려 우울증이 왔다. 몸은 안 아픈 곳이 없고 돈은 바닥을 쳐 빨간 글씨로 바뀐 지 몇 년 째, 어찌 꽃이 아름답게 보였겠나.

 

내 주변에서 보니 꽃 대궐 세상이 왔는데, 뭘 그렇게 꽃이 피었다고 야단이냐고 하는 분이 있다. 꽃이 피면 피는 거지, 피면 또 지는 건데 왜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한다. 맞다, 화무십일홍이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35세가 넘은 두 딸이 결혼하지 못한 채, 함께 데리고 사니 봄이고 꽃이고 간에 매일 매일이 초상집 같다고 한다. 딸들도 결혼은 하고 싶다는데 혼기를 놓치다 보니 30찍고 35찍고 40을 바라본다고 한다. 

남의 딸들은 결혼하여 애기 낳고 집사고 잘들 사는데, 우리 딸들은 어찌 할 것인지? 하루하루 시간은 빨리 가는데, 애는 타고 잠은 안 온지 오래며 죽고 싶다고 한다. 꽃을 보면 더 슬프다는 엄마, 내 딸은 슬픈 꽃! 

둘러보면 요즈음 결혼적령기를 넘긴 자녀를 가진 부모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분들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세상이 변하여 결혼을 늦게 하는 것이 추세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긍정적으로 감사할 일을 찾아보자고 했다. 한국은 미세먼지 때문에 고통스럽다 하는데, 캐나다는 맑은 공기를 수출하는 나라로 맘껏 산소를 마신다는 점, 딸들이 건강하여 일을 하고 많지는 않아도 돈을 번다는 점, 엄마 아버지가 아프면 병원에 무료로 가고, 65세가 넘으면 국가에서 세상 떠날 때까지 주는 연금타고 있으니 그도 감사한 점 등, 

“캐나다에 살면서 감사한 일이 많지 않아요?” 하니 

“어느 자녀가 캐나다같이 효자노릇 해줄까요, 캐나다가 효자지요, 그런데 저 두 딸만 결혼해서 나가면 소원이 없겠어요, 꽃도 피는 때가 있고 지는 때가 있는 법, 제 친구 딸도 미혼인데 38세로 생리가 끊어졌대요, 다른 친구 딸은 역시 미혼으로 42세인데 생리가 끝났다 하고요. 요즘 여자들에게 폐경이 일찍 오니 큰 일이예요. 어지간히 다이어트들 하더니....... 어느 분은 45세인 처녀 딸에게 재취자리가 들어왔대요.” 

오 마이 갓! 더 이상 나가다간 땅을 치며 통곡하게 생겼다. 


근래에 결혼 일찍 해준 자녀들은 하늘이 낸 효자효녀들이다.  

아름다운 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고, 푸른 하늘이 너무 좋아 미칠 것 같다는 것을 그 분과 함께 마냥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토론토의 초록 바람 속에 해당화 꽃잎은 향기를 품어대는데 가슴은 희비가 엇갈린다.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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