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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진중권 칼럼

20대의 변심

진중권 2021-04-0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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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문재인 찍은 거 후회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그 마음을 갖고 오세훈 유세차량에 오르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거야. 정부가 투기세력 못 잡았다고 투기세력 차량에 오르면 어떡해. 그 차량 내곡성에서 온 거 정말 모르겠어?” 진보 언론 출신으로 친문 인플루언서인 허재현 기자의 말이다.


20대의 젊은이들이 국민의힘 유세차량에 오르자 약이 잔뜩 올랐나 보다. 그들을 “바보”라 부르며 지지자들에게 당부한다. “얘네들 얼굴 잘 기억했다가 취업 면접 보러 오거든 반드시 떨어뜨리세요. 건실한 회사도 망하게 할 애들입니다. 국민의힘 지지해서 문제가 아니라 바보라서 문제입니다.”


20대와 40대 사이의 세대단절을 이보다 더 극명히 보여줄 수 있을까? 여기서 20대는 면접생으로, ‘대깨문’의 주축 40대는 면접관으로 표상된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40대가 벌써 그 알량한 권력으로 ‘취업’에 목매는 젊은 세대에 자기들의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친문 인플루언서 류근 시인은 20대의 오세훈 지지율이 높게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20대 청년이 그 시간에 전화기 붙들고 오세훈 지지한다고 뭔가를 누르고 있으면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가.” 그런 20대를 그는 “돌대가리들”이라 부르며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덧붙인다.


박영선 후보는 20대의 역사의식 부족을 탓한다. “20대의 경우 과거 역사 같은 것에 대해서는 40대와 50대보다는 경험치가 낮지 않나.”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빤하다.


‘우리가 20대에게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20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마침 자기들을 가르치려 드는 ‘꼰대’들이 아닌가.


20대가 된 촛불 소년·소녀들

그 반감 때문일 게다. 국민의힘 ‘2030 유세단’에는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몰렸다. 반면, 박영선 캠프에서는 지지 연설을 해줄 젊은이들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은 모양이다. 맞불을 놓으려 유세차에 ‘30대 여성시민’과 ‘28세 대학원생’을 올렸지만, 알고 보니 둘 다 민주당 당직자였다고 한다.


이른바 ‘20대 개론’은 새로운 게 아니다. 나꼼수 멤버 김용민은 2009년 정치참여가 저조한 20대를 “너희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저주하며, 촛불을 들었던 10대 소년·소녀들만이 희망이라고 추켜세웠다. 근데 그가 희망이라던 촛불 소년·소녀들이 지금 20대가 되어 국민의힘 유세차에 올랐다.


민주당에서는 20대의 지지가 저조할 때마다 그들의 무지를 탓하곤 했다. 2019년 설훈 의원은 “기본적으로 교육 문제”라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학교 교육을 받았는데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라면 진보교육감 시절. 반성이라곤 조금도 없다.


50대 시인이 묻는다. “정상적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찌 오세훈·박형준 같은 추물들을 지지할 수 있나.”(류근) 20대 인턴이 답한다. “우리가 오세훈을 찍는 것은 오세훈이나 국민의힘이 좋아서가 아니다. 지난 반성의 모습을 봤고 고쳤다면 쟤(민주당)보단 낫겠다 판단해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세대라는 기억의 공동체

한 세대의 정치적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그 세대가 공유하는 역사적 기억이다. 지금 60대 이상의 세대에 그것은 60~70년대 산업화의 추억. 이 산업화 서사가 한국 보수를 지탱해 온 역사적 기억이다. 50대가 된 전대협 세대에 그것은 물론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기억이다.


40대는 한총련 세대로, 이들 학창시절에 사회주의는 몰락하고 민주화는 제도적으로 완성된 상태였다. 이들의 정치적 기억은 주로 노사모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탈이념화한 선배세대보다 극렬한 것은 책이 아니라 나꼼수와 유튜브로 정치를 배웠기 때문일 게다.


2030 세대는 완전히 다른 정치적 주체들이다. 이들은 포스트 운동권 세대로, 그 성향이 집단주의적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이다. 이들이 가진 정치적 기억이라곤 탄핵 촛불시위뿐이다. 이 기억을 그들은 4050 세대와 공유한다. 하지만 그 승리의 기억마저 4050 세대에 빼앗겼다고 느낀다.


2030 세대는 민주화의 기억도 없듯이, 독재의 기억도 없다. 그래서 ‘역사의 경험치가 낮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2030 세대는 사회에서 4050 세대를 직장 상사로 만난다. 당연히 그 경험이 좋을 리 없다. 그래서 그들은 한 세대 건너 60대와 정치적 선택을 같이하는 데 거부감이 없거나 덜하다.

국민의힘의 탈극우화

2030세대가 스윙보터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이 나라의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해온 두 서사,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억에서 모두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들과 60대 사이에도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지금은 잠시 60대와 함께 하지만 이들은 언제라도 4050 세대에 합류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산업화의 기억에 유폐된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나름 노력을 해 왔다. 지도부는 광주진압과 두 대통령의 과오를 사과했고, 지지자들은 유세장에 태극기 들고 오는 일을 삼갔다. 그러자 정청래 의원이 “황교안 나오라”고 한다. 자기들에게 익숙한 대립구도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민주당은 자신을 4050 세대의 기억에 유폐하여 국정운영을 수구세력, 쿠데타 세력과 싸우는 민주화 운동으로 표상하며 제 비리에 대한 비판을 적들의 음모로 치부해 왔다. 그들의 이런 행태를 운동권 정체성이 없는 중도층, 민주화의 기억이 없는 2030이 이해할 리 없다. 그러니 떠날 수밖에.

능력주의의 문제

박노자 교수는 국민의힘 유세차에 오른 젊은이들이 “본래 극우 쪽에 섰던 분들”이라고 말했다. 비록 망언이지만 그의 진단에 새겨들을 부분이 없지는 않다.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은 시민적 ‘정의’라기보다는 경쟁에서의 승패 결과를 합리화하면서 경쟁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 그런 개념이다.”


맞다. 2030은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정의를 믿지 않는다. 금수저-흙수저의 신분 차이는 ‘운명’으로 여기고,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빚어진 격차는 기꺼이 인정하려 한다. 그러니 경쟁의 공정성만은 지켜달라는 것이다. 2030의 서사는 이 능력주의(meritocracy), 즉 개별적 경쟁의 이데올로기다.


박 교수는 말한다. “순리대로라면 문재인 정권에 실망한 젊은 피해자들은 오른쪽 끝자락이 아니고 왼쪽으로 와야 한다.” 맞다. 그런데 그 ‘왼쪽’에 가 있는 사람들이 제 자식 입에 금수저 물리고, 강남에 아파트 사고, 그걸로도 모자라 부정입학으로 과정의 공정마저 해쳤다. 거기에 분노하면 ‘극우’인가?


“신자유주의 피해자들이 자기 손으로 신자유주의 적폐정권의 탄생에 일조하는 웃지 못할 비극”이란다. 좌파들이 품앗이로 자식 스펙 만들어주고, 부동산으로 자산 격차 만들어 물려주는 사회에서 ‘난 내 실력으로 할 테니 공정한 경쟁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그렇게 지탄받을 일인가?

2030을 위한 서사

50대야 취직 걱정 없었고 40대야 운 좋게 집이라도 장만했으니 ‘나라’ 걱정하는 사치라도 누리지만, 비정규직과 무주택의 현실에서 2030에 허용된 것은 깜깜한 ‘내’ 앞날 걱정뿐.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외치는 좌파마저 일상에선 개별적 처신을 꾀한다. 자기들도 안 믿는 얘기를 2030이 믿겠는가?


물론 과정만 공정하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금수저 문 아이와 흙수저 문 아이가 공정하게 경쟁한들 결과는 빤하다. 경쟁이 공정했다고 승자가 결실을 독식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이 능력주의 한계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려면 자기들부터 기회의 평등, 결과의 정의를 믿고 실천했어야 한다.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할 거라면 그냥 목소리라도 들어주면 안 되나? 2030이 보수당의 유세차에 오른 것은 그 당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믿어서가 아니다. 보수가 이들에게 진짜로 지지를 받으려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능력주의의 대안 서사를 고안해야 한다.


386세력이 주류가 되는 데 20년이 걸렸다. 다시 20년 후엔 2030이 주류가 될 게다. 보수든 진보든 권력을 잡으려면 이들을 잡아야 하고, 그러려면 산업화·민주화라는 두 근대화 서사 ‘이후의 서사’를 써야 한다. 그런 마당에 ‘20대 개××론’이나 펴고 있으니 민주당도 과거의 저 당처럼 폭삭 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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