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심부름으로 마켓에 들렀는데, 저의 발걸음이 자꾸만 어긋나듯 삐걱거립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무엇인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결국 운동화 밑창이 떨어져 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러서 낡은 운동화이지만 이 운동화는 하원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선물해 준 것이라서 저에게 특별한 운동화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 운동화를 사야겠다는 생각에 운동화 할인 매장에 방문했지만, 선반에 놓인 가격표는 금새 저의 발걸음을 돌려 세웠습니다. 결국 저의 선택은 집으로 돌아와 강력 본드로 떨어진 운동화 밑창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밑창이 떨어진 운동화를 붙이며 문득 신발과 관련된 저의 경험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고무신을 신고 자랐기에, 신발은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장에 나가 신발 한 컬레를 사 오시기라도 하면 저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시장표 신발이기에 그 어디에도 브랜드 표시가 없었지만, 신발 옆면에 로봇이라도 그려져 있으면, 마치 제가 로봇이 된 것처럼 신발을 신고 날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운동화를 신어 본 것은 아마도 중학교 시절에 신었던 ‘프로 월드컵’ 운동화였습니다. 하얀색 운동화에 대문자 ‘W’ 로고가 붙어 있는 운동화는 가난한 학생들의 대표적인 신발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운동화의 밑창이 떨어졌다고 해서 금세 새 운동화를 살 수는 없었습니다. 모두가 그렇듯 비 오는 날이면 운동화 밑창 틈새로 빗물이 스며들어 양말이 흠뻑 젖었고, 교실 안에는 그 젖은 양말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수업에 들어오신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발 좀 씻고 다녀라!”라고 핀잔을 주시면서 창문을 활짝 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학의 여정에서 저에게 한 벌의 양복과 구두는 마치 고등 학생의 교복과 같았습니다. 매번 똑 같은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기에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 번은 토요 새벽 설교를 전하고 나왔는데, 성도님 한 분이 다가와 아침 식사 교제 후 교회 물품을 살 것이 있다고 하시면서 잠시 같이 가자고 하십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성도님과 함께 간 곳은 구두 매장이었습니다. 성도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오늘 저는 목사님 설교가 잘 안들리고, 목사님 구두만 보였습니다.”
돌아보면 제 삶에서 신발은 누군가의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사 오신 신발, 중학교 때 처음 신어 본 ‘프로 월드컵’ 운동화, 유학 시절 교회를 섬기며 닳도록 신었던 구두, 그리고 하원이가 선물해 준 운동화는 모두 단순히 제 발을 보호해 준 신발이 아니라, 사랑과 헌신 그리고 믿음이 함께 담긴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설명하며, 성도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세 번째 요소로 “평화의 복음을 준비하는 신발”(엡 6:15)을 언급합니다. 바울이 굳이 신발을 예로 든 이유는, 성경 속에서 신발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 가운데 맨발은 주로 부정적인 상황과 연결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포로가 된 자들은 신발을 빼앗겼습니다(대하 28:15).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맨발로 도망친 사건도 단순히 급박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왕국이 일시적으로 수치를 당한 상태를 드러냅니다(삼하 15:30). 또한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상 숭배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편자(horseshoe)를 박지 않은 야생 나귀에 비유합니다(렘 2:23-25).
이와 반대로, 신발을 신는 행위는 준비된 순종을 상징합니다. 출애굽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킬 때 신발을 신고 허리에 띠를 띤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할 준비를 나타내는 행동입니다(출 12:11).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열방의 군대를 일으키실 때, 그 군대가 신발끈을 매는 모습은 전쟁을 준비하는 태세를 의미했습니다(사 5:27).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두 사람씩 짝지어 전도 여행을 보내실 때도 신발을 신으라는 말씀하셨는데(막 6:9), 이러한 모습은 복음 전파를 위한 준비와 헌신을 상징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우리들은 “평화의 복음을 준비하는 신발”을 신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마음과 사랑이 담긴 신발을 신고 여기까지 걸어왔듯이, 이제 우리의 발걸음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복음과 사랑을 건네는 다리(bridge)가 되어야 합니다.
(엡 6:15) 그리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준비하는 신발을 신고, (16)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들어 그것으로 악한 사람의 모든 불화살들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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