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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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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값

정인호 2026-01-16 0

우리 민족은 예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신명을 풀고 춤추는 가무음곡을 통하여 힘든 삶을 잠시 떠나 즐거움과 사랑을 표현했다. 만남과 이별, 꽃 피고 새 울면 다시 만날 약속조차 멋스러운 노래로 풀어냈다. 그래서 노래가 우리 전통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노래 부르기는 일상적인 삶에만 자리 잡은 게 아니었다. 국경일 경축 행사도 주악奏楽으로부터 시작된다. 제사나 종교 행사에도 엄숙함을 알리는 음악이 빠질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인 친교 모임에서도 한바탕 신명을 풀지 않고 헤어지면 섭섭하다고 옷소매를 놓아주질 않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가는 곳마다 노래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고객이 되어 신명을 풀곤 한다.


나는 노래방엘 가끔씩 간다. 좁고 어두운 공간이지만 개성대로 신명을 풀면서 생활에 찌든 스트레스를 지우려고 애쓴다. 이왕 마이크를 잡은 것, 상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애교도 부린다. 그 순간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진지하다. 어쩌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순수한 사람들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연예인들이 공연장에서 기량을 발휘하는 축소판 같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목청껏 내지르는 사람, 땀을 줄줄 흘리면서 마이크를 놓지 않는 그들은 세상사 아옹다옹 큰 의미를 갖게 한다.


노래방에서 웃고 떠들다 보면 주인공이 바뀔 때도 있다. 내 차례가 되어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자기 차례도 아닌데 마이크를 뺏는 이도 있다. 마이크를 뺏어들자마자 나보다 더 큰 소리를 내지르며 분위기를 독점한다.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분수를 모르고 끼어든다. 이런 장면을 ‘꼴값한다’ 라며 저쪽 구석에 앉은 이가 비꼬기도 한다.


노래방은 꼴값하려고 찾아간다. 합법적인 장소가 노래방이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하겠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다. 무질서한 곳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엄격한 질서가 존재하는 것이 우리 인간사회다. 내 순서인지 누가 주인공인지 구별해야 하는 곳이 노래방이다.

마이크 잡는 그들은 천태만상이다. 축하하려고 모인 장소에서 장송곡에 버금가는 느리디 느린 곡을 선곡해서 황소 잡는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다. 고독을 씹는다거나 초상집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람 말이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래방을 찾았는데 스트레스를 안긴다면 세상에 견딜 장사가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일수록 길고 긴 노래를 선곡하는 것을 보았다.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지치면 화장실을 들랑거린다.


떠나간 애인한테 소렌토로 돌아오라는 칸초네 노래도 세계적인 명곡 아닌가. 엄연한 명곡인데 작사 작곡을 제 맘대로 해버린다. 그게 청승맞아 나는 싫다. 페르귄트를 기다리다가 백발이 되어 버린 솔베이지 애절한 음성이라도 박자가 느려지면 싫어진다. 애상에 젖은 곡을 선곡해도 인내심으로 버티려고 애쓴다. 끝까지 감상해야 하는데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이 되고 만다. 세상사란 내 입맛대로 살 수 없다. 느리고 처량한 곡이라면 왜 그다지도 싫은지….


나는 노래를 못하는 축에 속한다. 그 대신 엇송아지 춤으로 대신한다. 차례가 되어 마이크를 손에 잡아 보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야릇한 긴장감으로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마이크 긴 줄을 쓸데없이 당겨 보기도 하고 둘둘 감아쥐기도 한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내 자세가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한량 기질과는 거리가 멀고말고.


다행인 점이 있긴 하다. 언제나 두 눈만큼은 똑바로 뜨고 노래를 부른다. 어설프게나마 허슬, 콩가 같은 한 줄로 여러 명이 서서 추는 댄스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거기다가 탬버린을 흔들면서 촐랑거리며 허밍으로 따라 부른다. 어깨도 들썩들썩하고 발을 쿵쿵 굴리면서 영국 가수 클리프리차드 흉내를 내기도 하는데 그들이 날보고 꼴값한다고 비꼬지 싶다.


어떤 노래든 절정 부분이 있다. 누구든 이 클라이맥스를 멋지게 불러보기 위해 그 앞부분부터 인내심 있게 끌고 나간다. 그 순간을 노리고 얌체 같은 친구가 끼어들어 큰 소리로 절정부분을 망쳐버린다. 천근만근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내 처지에 속 시원하게 한 곡 뽑으려다가 꼴값하는 사람에게 마이크를 빼앗기고 만다. 이럴 때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 다양한 인간관계의 얽힘을 통해서 나의 즐거움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옳지 않은가. 

기초 예절이 부족하다면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가르쳐 준다. 그러면 가정에서는 부모가 바로잡아 주겠지. 아하! 노래방에서 꼴값하는 사람들은 누가 고쳐 줄까. 내가 앉아도 될 자리인가, 끼어들어도 되는가를 살펴보고 앉는 것도 노래방 예절이 아닐까. 아! 제발 내가 노래 부를 때 좀 끼어들며 꼴값하지 마소. 이것이 나의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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