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 Credit River로 향합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커피 한잔의 여유와 함께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클래식 음악에 빠져 들고 싶은데 달리기를 선택한 이유는 사색(思索)의 시간을 갖기 위함입니다. 무엇인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나 생각들을 가지고 달리기 시작하면 머릿속에서 풀지 못한 일들이 갑자기 풀리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을 끄집어 내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바라보면서 삶의 이치를 깨닫기도 합니다.
지난 주간에 갑자기 올라간 날씨 때문인지 Credit River의 물소리가 흥겹습니다. Credit River 주변의 자그마한 연못(pond)은 아직 얼음이 그대로 있는데, 물줄기가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서는 마치 이른 봄이 온 것처럼 생명의 소리들이 들립니다. 눈 속에 파묻혀 있었던 잔디도 생명을 품고 푸른색을 보여 줍니다. 모처럼 얼어붙은 땅이 아니라 생명의 푸근함을 품고 있는 땅을 밟아 보니 정말 봄이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이러한 착각은 저만의 모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강추위로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는 먹잇감을 얻기 위해 어려움을 겪었던 오리 무리가 흐르는 강물 속에서 먹잇감을 찾기 위해서 연신 엉덩이를 하늘로 들고 물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청둥오리 떼가 물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청둥오리의 발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흐르는 물 속에서 균형을 잡고, 강가에 부는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수면 아래에 있는 청둥오리의 발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모처럼 커다란 무리의 오리 떼와 청둥오리 떼가 무리를 지어서 Credit River를 가득 채웠습니다. 긴 겨울 속 잠시 주어진 따뜻한 날씨에 자연은 생명을 키워냅니다. 사람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청둥오리 떼가 강 줄기를 따라 거슬러 날아오르기 시작합니다. 한 마리의 청둥오리가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서 발로 물을 박차고, 날갯짓을 시작하니, 어느 순간 물 위에서 힘찬 비상(飛上)이 시작되었습니다.
청둥오리에게 있어서 날갯짓은 일상인 것 같은데, 수면에서 날아오르는 순간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한 마리의 청둥오리가 물 속에서의 휴식을 끝내고 날기 시작하였을 때 청둥오리에게 있어서 비상은 일상이 아니라 보다 나은 환경에서 먹거리를 찾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이 비상을 위해서 청둥오리는 물 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먹이를 찾고, 에너지를 비축했나 봅니다. 겉보기에는 청둥오리의 날갯짓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삶처럼 보이지만, 청둥오리는 한 번의 비상을 위해 그동안 축적해 온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붓는 가장 비싼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청둥오리는 그 비상을 통해 생존과 안전을 보장 받고, 무엇보다도 무리가 함께 비행하기 위해서 같은 방향을 공유하고, 공동체가 살아남는 길을 선택합니다.
오늘도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청둥오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향해 비상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는 모습을 마치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사 40:31). ‘앙망하다’(qawa)라는 히브리어 동사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소망 가운데 ‘기다리다’(to wait for)라는 의미입니다. 비상은 조급함의 결과가 아니라 기다림의 결과입니다. 비상은 인간의 힘으로 스스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받아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비록 젊은 사람들도 지쳐 넘어질지라도 여호와를 소망 가운데에서 기다리는 자들은 독수리가 창공을 나르는 결코 지치지 않는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고 아무리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사 40:31).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날까 생각해 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 한 후 삼 개월이 되던 날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비상은 스스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업어 올리시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자유를 허락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을 믿는 자들에게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갑니다. 때로는 달리고, 때로는 걷고, 때로는 멈춰 서서 하나님을 앙망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독수리의 날개처럼 성령의 날개로 우리를 업어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십니다.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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