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동계올림픽이 2026년 2월6일부터 2월22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 두 곳에서 열린다. 코르티나 담페초는 '암페초의 장벽'이란 뜻으로 그냥 '코르티나'로도 불리는 인구 약 6천 명의 조그만 도시다. 하지만 ‘돌로미티 산맥(The Dolomites)’의 동쪽 입구에 위치해 있어, 일찍이 겨울 스포츠의 중심지로 각광받아 이미 70년 전인 1956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곳이다.

▲ 가운데에 바로크 양식의 코르티나 담페초 대성당이 보이는 시내 전경.
또한 영화 '핑크팬서(1963)', '007 포 유어 아이스 온리(1981)'와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클리프행어(1993)' 등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그리고 1922년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가 단편소설 '철이 지난(Out of Season)'을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첫부인 엘리자베스 리처드슨이 파리 리옹 역에서 남편의 원고로 가득 찬 여행 가방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여, 당시 스위스 로잔에서 기다리고 있던 헤밍웨이는 큰 상실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거처를 옮겨 코르티나에서 다시 집필하여 그 다음해에 “3개의 소설과 10개의 시”에 포함시켜 출간했다. 이 '철이 지난' 단편은 이른바 '생략론(省略論)' 즉 '빙산 이론(iceberg theory)'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 앙증맞은 알피니 교회(Cappella degli Alpini) 전경.
얘기가 좀 길어졌지만 한 가지는 꼭 해야겠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버스로 3시간이 걸려 코르티나에 도착하여 '포스테 호텔(Hotel de la Poste)'에 투숙하고 만찬을 했는데 주메뉴가 양고기였다. 하지만 설마가 역시나가 되어 무척 실망스러웠다. 양고기 육질이 고무처럼 질길 뿐만 아니라 나이프 날까지도 들지 않아 모두 반납하다시피 손을 놓았다. 코르티나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시작됐던 것이다. 2년 반 전의 일이다.
코르티나 여행의 백미(白眉)는 돌로미티 산맥의 하이라이트인 '트레치메' 등반이다. 정식 명칭은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이탈리아어로 '산꼭대기, 정상'을 의미하는 '치마(cima)'의 복수형이 '치메(cime)'이고, '트레(tre)'는 '3(three)'을 의미하니 '라바레도에 있는 세 봉우리'란 뜻이다. 독일어로는 '드라이 치넨(Drei Zinnen)'이라고 부른다. 돌로미티 산맥은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트레치메로 가는 길. 오른쪽에 병풍처럼 펼쳐진 산이 토파네 산(Tofane, 3,244m).
코르티나에서 약 20km를 달려 해발 2,300m에 위치한 주차장에 도달하면 먼저 아우론초 산장(Rifugio Auronzo)을 만난다. 여기서 가장 큰 3층짜리 숙소로, 톱니바퀴처럼 뾰족뾰족 솟은 기묘한 모양의 ‘미수리나의 카디니 산(The Cadini di Misurina)’ 전망이 빼어나다.
여기가 출발점으로 오른쪽, 그러니까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코스를 택해 20분 정도 올라가면 조그마한 '알피니 교회(Cappella degli Alpini)'가 나타난다. 이 앙증맞은 교회는 1916~1917년 사이에 이탈리아 보병부대가 세웠는데,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이탈리아 알파인 보병부대(Alpine Corp.)의 용맹한 승리를 기념하여 구원의 성모 마리아에게 헌납되었다.
거기서 한참 더 올라가면 '라바레도 산장(Rifugio Lavaredo)'이 반긴다. 이 산장은 산악구조대 설립자인 프란체스코 코르테 콜로가 1954년 건립한 것이다. 숙박비 2인1실 기준 260유로. 특이한 점은 공동욕실이고, 샤워는 토큰 당 8유로이나 온수는 3, 4분 정도밖에 안 나온다. 타올도 7유로를 내야하고 전기는 오후 10시에 끊긴다.
여기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기 때문에 일행 중 절반이 아쉽지만 포기했다. 저 멀리 병풍처럼 보이는 토파네 산(Tofane, 3,244m)이 금방이라도 달려올 듯 버티고 있다.

▲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 북면 - 삼형제봉(세자매봉). 왼쪽이 막내봉(Cima Piccola, 2,856m), 가운데가 가장 높은 맏형봉(Cima Grande, 2,999m), 오른쪽이 서봉(Cima Ovest, 2,973m).
드디어 트레치메를 왼쪽으로 끼고 정상을 넘는 순간 해냈다는 기쁨에 모두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말로 영락없는 '삼형제봉' 또는 '세자매봉'이라 할 만하다. 이 중 가운데 바위가 맏형봉(Cima Grande, Big Peak, 2,999m)으로 가장 높다. 그 오른쪽이 중간인 서봉(Cima Ovest, Western Peak, 2,973m), 왼쪽이 막내봉(Cima Piccola, Little Peak, 2,856m)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 6월인데도 아직 잔설이 있어서 쉽지만은 않은 길이라 또 여기서부터 온 길로 되돌아가는 일행과 아예 북쪽면을 끼고 한바퀴 일주하는 팀으로 나뉘어졌다.
▲ 잔설이 남아있는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험준한 트레킹 코스
▲ ‘랑알름 산장’에서 바라본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준봉.
우리 부부를 포함한 4명은 일주하기로 하고 로칼레티 산장(Rifugio Localetti)을 반환점으로 돌아 트레치메 북쪽 가파른 계곡을 오르내리며 또 다른 '랑알름 산장(Rifugio Langalm)'을 지나고 험준한 ‘메초 고개(Forcella Col di Mezzo)’를 넘어 주차장까지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랑알름 산장에서 바라본 트레치메 준봉은 입이 딱 벌어지는 절경이라 고역(苦役)은 충분히 보상이 되었던 것 같다. 거리는10여 km이지만 오르막내리막 난이도가 심하고 쉬엄쉬엄 간식과 촬영을 하면서 가다보니 4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전에 미수리나 호수(Lake Misurina)와 트레치메 남쪽면이 바라보이는 전망좋은 '라고 안토르노(Lago Antorno)' 식당에서 이번엔 사슴고기로 점심을 때웠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젊은 이탈리아인 사장이 인심 좋게 하우스와인을 무료서비스 해주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일주일 전만 해도 눈 때문에 트레킹이 어려웠다는데 그 사이에 많이 녹고, 무엇보다 날씨가 화창해서 무사히 트레치메 산행을 완주하게 돼 유럽알프스 여행에서 가장 뜻 깊고 보람있는 트레킹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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