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눈이 많았던 작년 연말, 교회 권사님 한 분을 하나님 품으로 떠나 보내는 장례 예식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유족들과 만나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자리는 엄숙하면서도 다소 사무적인 공기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고인의 두 따님과 마주 앉았는데, 한 분은 한국어가 많이 서투셨고, 다른 한 분은 아예 못 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일상에서는 흔히 쓰지 않는 낯선 장례 용어들과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가 건조하게 오가던 중이었습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장례식에서 부를 찬송가를 고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평소 어떤 찬송을 좋아하셨나요?” 그 질문 하나에 두 따님의 눈빛이 순식간에 반짝였습니다. 그 분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유튜브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적이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그리움이 가득한 얼굴로 어머니가 부엌에서, 침대 곁에서 흥얼거렸던 멜로디를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언어의 장벽도, 절차의 복잡함도 그 순간만큼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노래만이 따뜻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수십 년 전 서울 근교의 작은 집에 살던 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외할머니의 기도를 먹고 자란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 함께 사시며 저를 돌봐주셨던 외조모님은 늘 저를 당신의 무릎팍에 앉히시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시곤 했습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어린 시절, 그 가사의 깊은 신학적 의미를 어찌 다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할머니의 마른 무릎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 느껴졌던 것은, 바로 그 노래가 주는 평안함 때문이었습니다. 외조모님이 돌아가신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인생의 거친 파도를 만날 때마다 제 영혼을 붙들어 매는 것은 바로 그때 귓가에 맴돌던 그 멜로디입니다.
이민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이곳 토론토에서도 이와 비슷한 풍경을 자주 목격합니다. 부모 세대가 바쁜 삶을 꾸려가는 동안, 조부모의 돌봄을 받고 자라난 2세, 3세들을 봅니다. 비록 서툰 한국어로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할 뿐이고, 할머니가 믿던 하나님을 영어로 이해하지만, 그 아이들도 할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찬송을 기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비록 가사의 뜻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멜로디에 담긴 사랑과 눈물, 그리고 삶을 지탱해 온 견고한 믿음의 정서를 온몸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까요? 물질적인 풍요나 사회적인 성공도 중요하겠지만, 인생의 결정적인 위기 앞에서 마음을 뉘일 수 있는 단단한 반석이자 푹신한 침대와 같은 영혼의 버팀목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요. 내가 눈 감는 날, 나의 자녀들이 나를 어떤 소리로 기억할지 생각해 봅니다. 불안과 염려의 한숨 소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던 믿음의 노래가 우리 자녀들의 가슴 속에, 이 험한 세상 속을 살아가는 그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새겨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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