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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더 (reminder/기억 보조 도구)

김카리스 2026-01-30 0

지난 주에 나는 십대 이후로 살았던 집 주소와 날짜를 정리해야 할 일이 생겼었다. 한국 같으면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보면 금방 나올 기록들일 텐데, 대학 졸업 후 나는 여러 나라에서 긴 유학생활을 한 터라 매년 한 권씩 써왔던 연간 스케줄러(Annual Scheduler) 노트북을 훑어보며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내 스케줄러 안에는 그 날의 일과와 여러 종류의 일들이 적혀 있었다. 막내 아이의 첫 걸음마, 둘째 아이 농구 게임 가야 하는 시간, 첫째 아이 바이올린 레슨비, 어떤 식당 주소, 병원 예약 시간, 담당 교수님과의 면담 주제, 기말 시험 과목, 매년 바뀌는 부모님 음력 생신 날짜 등등 소소한 일상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지금은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아 낯설기까지 한 기록들도 있지만 그때는 그 약속 시간 몇 분 안 늦으려 얼마나 서둘러 운전을 했었을지, 그 시험을 잘 보려고 몇 밤을 세웠었을지, 또, 부모님께 유학생 처지에 값비싼 생신 선물은 드리지 못하고 아이들이 생신 축하 노래 부르는 영상을 만들어 한국 시간에 맞춰서 보내드리려 얼마나 아이들을 재촉했었을지 등의 내 모습은 유추가 되었다. 어쨌든, 잊지 않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의 기록들이었다.  

성경에 보면 그 속의 사람들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도구들을 가졌었다. 어떤 공간에 돌 기념비를 세우기도 하고, 날을 구별해 매년 절기로 지키기도 한다. 때론 책을 만들어 기록하기도 한다. 오늘날 코덱스 형태의 책과는 다른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조금 색다르게 느껴지는 도구에는 패션도 있다. 현대의 종교적 유대인들이 아직도 지키는 전통이기도 한데, 옷 단에 술을 달기도 하고 이마에 성구 상자를 붙이거나 손목에 매기도 한다.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도구들이다. 사실 이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들의 기억력의 한계를 아는 신의 명령, 아니 배려였다. 책 같은 경우는 기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적고 귀에 들려 읽히라고까지 당부할 때도 있다(출애굽기 17:14). 또, 기억이 세대를 걸쳐 이어지도록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 패턴을 알려주기도 한다(신명기 6:20).  

놀랍게도 사람들만 이런 기억을 위한 도구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한 리마인더(reminder)가 성경에 언급된다. 한 예로 패션 아이템도 있는데, 제사장 의복의 가슴에 달린 보석들은 신이 선택한 자손들의 이름을 도장 파듯 새겨 넣어 하나님 앞에 기념(a memorial)이 되게 한다(출28:29). 가장 내 마음에 울림이 되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고통으로 인한 울부짖음, 신음, 탄식, 눈물 등이 신에게 리마인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에 긍휼함으로 반응하는 신의 모습이 성경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출애굽의 단초가 이렇게 설명되어 있고(출2:23-25), 시편의 저자들이 자신의 신음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기록하고 있다(시편 12:5). 또한, 신이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온 예수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괴로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찾아다녔다. 모두가 하나 같이 신이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기억의 도구였으며, ‘사랑’으로 귀착되기 위한 ‘알림’ 기능이었다.  

내 연간 플래너는 구글 캘린더로 옮겨 갔으나, 하나님의 리마인더는 여전히 우리의 ‘애통하는 마음’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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