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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칼럼

주기도문이 요구하는 용서의 삶

박웅희 2026-01-30 0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은 예배 끝날 때 단순히 외워서 반복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내용도 알지 못하고 그냥 외우는 주문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Ἀββᾶ ὁ πατήρ)로 부르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된 성도가 기도를 어떻게 하며 기도한대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는 서약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중 3 개의 청원은 1)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나라가 임하시오며, 3)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청원과 “우리” 즉 교회 공동체인 성도들이 청원하는 1) 일용할 양식과 2) 죄용서와 3) 시험에 들게 하지 않게 해달라는 3개의 청원과 마지막 송영(Doxology)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구절은 다른 청원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기도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용서에 대한 것은 실제로 적용하지 못하는 가장 어려운 부분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을 나열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용서의 간구는 “너희들이 먼저 용서하면 이렇게 하면 용서해 주시겠다”는 거래의 언어가 아닙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용서해야 그 대가로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용서할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당신이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저 놈이 나를 험담하고 나를 못살게 굴어서 내가 언젠가 저 놈을 손 봐 주어야겠다”는 미움과 복수, 이웃에 대한 원한과 증오심을 품고서 하나님이여 나의 죄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하는데 나는 죄 용서받지 않겠습니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과 이웃에 대하여 용서하는 것이 이렇게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죄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빚, 채무(dept)란 뜻으로 오페일레마 ὀφείλημα)입니다. 즉 “빚을 없던 것으로 해주다, 채무를 완전히 탕감하다”란 의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죄를 하나님에 대한 빚으로 보았고 이웃에 대한 빚으로 본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원죄와 자범죄를 지은 자로서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을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영적 파산된 자들입니다. 영원한 심판과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피 공로로 죄의 빚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채무 증서를 다 불태워 버리셨습니다. 그것도 단번에 일시불로 채무를 갚으실 뿐 아니라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용서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마 18:23-35)으로 인간이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인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빚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줘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용서했으니 저 사람 용서해달라가 아니고 정확히 표현하면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와 동시에 우리도 우리에게 빚진 자들(죄들)을 용서하겠나이다”란 뜻입니다.

주기도문의 용서에 대한 기도는 타인의 죄를 떠올리게 하기보다, 나의 완고함과 자기 의, 그리고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마음을 먼저 드러내는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은 개인의 기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는 말씀에서 우리란 공동체의 기도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와 가정, 세상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지를 묻는 기도입니다. 용서 없는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나와 우리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였습니까?

“당신은 정말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았는가? 죄 용서받은 감격과 기쁨 속에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주기도문 직 후에 나오는 마태복음 6장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의 6 가지 기도의 청원 중에 오직 ‘용서’만을 따로 떼어 설명하시며, “너희가 사람의 죄를 사하여 주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기도 문이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에 대한 것으로 여기서 ‘사하여 주다’ 의 원어적 의미는 아피에미(ἀφίημι)라는 단어로서 최고의 강조 용법인 현재 시제 명령법으로 오늘 행동을 전제하는 동사입니다. ‘지금 붙잡고 있던 것을 놓아주다’, ‘계속해서 탕감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용서는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받은 우리를 먼저 용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오늘, 지금(here and now)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는 증인으로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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