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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경서 103

김경진 2026-01-30 0

시대의 사명자


“잠수함을 탄 토끼”란 말이 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잠수함 승무원이었을 때 당시 기술로는 잠수함 내 공기 오염도를 측정할 수 없어 공기에 민감한 토끼를 태우고 다녔는데 무슨 이유인지 어느 날 토끼가 죽자 선장은 그를 잠수함 바닥의 토끼가 앉았던 자리를 지키게 했다. 그 후 그는 현실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작가의 사명을 “잠수함을 탄 토끼”라 했다.


그 말을 되새기며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는 그 토끼처럼 잠수함 속의 사람들에게 공기의 오염도, 산소가 모자람을 일깨우고 살아가는 사명자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작가만 아니라 목사들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그렇다. 주변의 눈치나 보고 남들이 뭐라고 말할까 하는 사람들의 평가 때문에 사명감을 잊어버릴 때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나 그 토끼처럼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들이 있을 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사명 또는 사명자란 단어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많은 책임 있는 사람들이 그 타이틀과 명예를 지키노라 살아가면서 정작 사명을 잊은 것은 아닐까? 게오르규가 말한 토끼보다 못한 인생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면 아니 그렇게 살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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