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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을 무기로 삼는 권력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윤방현 2026-01-30 0

전과사범 이재명만을 위한 사법개편, 이것이 과연 개혁인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법개편’ 논의는 개혁의 외피를 쓴 자기구제 시도에 가깝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의 대원칙은 말로만 남고, 실제 제도 설계와 정치적 메시지는 특정 개인, 바로 전과사범 이재명 본인을 위해 전개되고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과 수사를 되돌리기 위한 제도 손질을 ‘정의’와 ‘민주주의’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법치국가에서 사법개혁은 특정 정치인의 형사 리스크를 덜어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금의 개편 논의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공소권, 수사권, 재판 구조를 동시에 흔들면서 그 종착지는 늘 하나다. 이재명 개인의 사법적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이것이 과연 공익인가, 아니면 권력을 쥔 자의 자기보호 본능인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선고재판을 앞두고 온 국민의 신경이 곤두서 있는 이 시점에, 법원이 보여야 할 태도는 단 하나다. 공평무사함이다. 누구의 정치적 유불리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법원이 권력의 기류를 읽고 판결의 강약을 조절한다면, 그 순간 사법은 독립기관이 아니라 정치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한다. 최근 한덕수 총리에 대한 23년형 선고를 둘러싼 논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형량의 과중함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왜 유독 특정 인물과 특정 진영에만 가혹한 잣대가 반복적으로 적용되느냐는 의문이다. 법은 엄정해야 하지만 엄정함은 선택적일 수 없다. 권력에 불리한 인물에게만 칼날이 서고, 권력의 핵심에는 관대한 사법이라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편파다. 이재명은 스스로에게 묻기 바란다. 정말로 정직했는가. 정말로 떳떳한가. 진정한 지도자라면, 그리고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다면, 자신의 혐의에 대해 당당히 재판을 받고 정정당당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지금의 흐름을 방치한다면 결말은 분명하다.

권력은 사법을 길들이고, 사법은 권력의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가 된다. 계엄 사태라는 국가적 비극마저 정치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권력의 성을 쌓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의 전형이다. 역사는 언제나 이렇게 시작됐다. 정의를 외치며 법을 장악하고, 개혁을 말하며 반대자를 제거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동조다. 법원이 권력 앞에서 바로 서지 못하고, 정치가 사법 위에 군림하는 순간, 무너지는 것은 특정 진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법치 그 자체다. 법은 권력자의 방패가 아니다. 법은 국민 모두의 최후의 보루다. 이 단순한 진실을 외면하는 권력은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이 사태를 단순한 정치 공방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사법개편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일련의 움직임은, 권력을 쥔 자가 자신의 법적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국가의 기본 질서를 재편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훨씬 더 본질적인 문제를 내포한다. 신문 사설이 이 문제를 외면한다면, 언론은 감시자가 아니라 방관자가 되고 만다. 법 앞의 평등은 민주주의의 장식 문구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스스로를 절제하도록 강제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러나 지금의 권력은 그 안전장치를 제거하려 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은 적폐로 낙인 찍고, 불리한 수사는 정치보복으로 규정한다. 반면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은 사법부의 독립이라 이재명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제도를 흔들어 스스로를 구제하는 정치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국민과 동일한 기준에서 법의 판단을 받는 정치인이 될 것인가. 후자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권력을 통해 법 위에 서려 했던 수많은 실패한 지도자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사법은 누구의 것도 아니며, 권력의 방패가 될 수 없다. 법원이 권력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정치가 사법의 선을 넘지 않을 때만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원칙이며, 타협이 아니라 법치에 대한 단호한 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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