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식당에서 이민 목회를 하고 있는 타 교단의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후배 목회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담임으로 사역하면서 교회가 분열되는 과정에서 여러 목회자들로부터 깊은 배신을 경험했다고 조심스레 털어놓았습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 가슴에 묻어 두었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를 섬길수록 교인들과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이는 분명히 목사님과 소그룹과 일대일 양육에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민자와 유학생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듣고 돕게 되며, 그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함께 감당하다 보면 목회자는 단순한 설교자가 아니라 삶의 동반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 가까움은 때로 오해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 사역을 대하는 태도, 코고 작은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왜곡되어 전달되며, 결국 말로 인한 상처와 관계의 균열로 이어지곤 합니다.
이민 교회의 특징은 조국을 떠나 부모와 고향을 뒤로한 채 낯선 땅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생활을 합니다. 언어와 문화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과 외로움과 불안, 경쟁, 생활이 안정 되지 못한 일상이 되다 보니 교인들도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에 대한 소속감도 현저히 떨여져 있습니다. 본래는 크지 않았을 문제들이 관계 안에서 증폭되어 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민 교회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수평 이동이 발생합니다.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목회지를 옮겼지만 어느 중•대형 교회를 섬겼던 한 목회자가 설교 중에 “우리 교회 교인들의 8~90퍼센트는 다른 교회에서 옮겨 온 분들이다”. 라고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이민 교회가 얼마나 많은 관계의 어려움과 상처를 안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만 달란트 비유를 들려주십니다(마 18:21-35). 한 달란트는 당시 은 6천 데나리온에 해당했고, 한 데나리온은 성인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약 6천만 데나리온, 곧 인간의 평생을 수천 번 살아도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수천억에서 수조 원(대략적으로 캐나다 달러 80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으로 이해됩니다. 자기는 일만 달란트의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으면서도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캐나다 달러 1만 5천 달러) 의 빚을 갚지 않는다고 옥에 가두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절대 갚을 수 없는 빚”을 통해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반면 백 데나리온은 백 일치 품삯으로, 결코 가볍지 않지만 일만 달란트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아주 적은 액수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적은 빚을 진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죄가 사함 받은 사람이 많이 주님을 사랑합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합니다(눅 7:47).
팀 켈러는 “일만 달란트 비유는 용서하라는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치는 말씀이 아니라, 복음을 잃어버린 사람의 위험을 경고하는 말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가정, 사회 생활에서 자신에게 빚진 백 데나리온을 붙잡고 용서하지 않는 자리에 선 순간 그는 하나님에게 받은 일만 달란트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용서하지 못한 이유는 상대의 빚이 커서가 아니라, 자신이 탕감 받은 빚의 크기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위로부터 용서받았기에 그 용서가 아래로 흘러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엄청난 죄의 빚을 십자가에서 다 청산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할부가 아니고 일시불로 영원한 속죄로 빚을 갚아 주셨습니다. 용서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주하시며 충만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합니다.
로마서 5장 5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어졌느니라.” 여기서 “부어졌다”는 말은 조금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쏟아 부어 주셨다라는 과거형입니다. 용서는 인간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가득부어 주실 때 가능한 열매입니다. 목회자나 평신도들이 지난 날의 아픔과 상처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충만하여 사랑이 가득 넘쳐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사랑하는 공동체는 천국의 실제를 오늘 나의 마음에서,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현실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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