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대학 후배 하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추방을 당해 어려움 가운데 있던 후배였습니다. 20년 전 학교에서 뜨겁게 찬양하던 좋은 기억 하나로 토론토로 초대해 교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함께 있는 동안 후배 얘기를 들으면서, 그 친구에게는 정치도, 종교도, 교회도, 결혼도, 가정도 문제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세상 모든 게 문제로만 보인다면 모든 것을 문제로 보는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제게 들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문제투성이었고 또 문제투성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희망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느냐에 따라 유신론적 세계관과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과 인생에 문제 없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 없는 삶에서 하나님을 자기 중심에 모신 삶으로 옮겨갈 때 우리 삶은 문제투성이가 아닌 경험해 가는 하나님의 신비로 변화하게 됩니다. 땅을 기어가는 애벌레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애벌레에게는 길 위에 놓인 작은 작대기도, 돌멩이도, 또 물 웅덩이도 모든 것이 넘어가야 할 장애물이요 해결해야 할 문젯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모든 문제와 장애물이 구경거리로 바뀌게 됩니다. 인생이 자기 힘과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려 씨름하는 데서 하나님의 큰 손을 의뢰하기 시작하면 삶은 해결해 가야 할 문제가 아닌 경험해 가야 할 신비로 바뀝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한 가지는, 우리 삶에 물질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도, 재미도, 성공도 다 필요한 것들이지만, 이것들이 우리 삶에 참된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우리 인생이 참 기쁨과 만족, 행복을 찾아서 사람의 인정이든, 물질이든, 성공이든, 향락이든 그 가치를 좇아서 열심히 달려가는데, 왜 우리 삶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가득하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세계 경영, 하나님의 가정 경영, 즉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경륜)”가 우리에게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중심이 바로 이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입니다. 성경은 베일에 가려진 우리 삶의 근원과 종말, 의미와 목적을 계시해 주는 인생의 사용설명서입니다. 신비라고 번역된 성경의 단어 "뮤스테리온"의 히브리어, "소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이뤄지는 천상의 어전회의를 뜻합니다. 성경의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말씀이 이 "소드"이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정직히 그 앞에 나아가 머무는 이들에게 "소드"가 경험된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우리 존재와 삶에 담긴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뜻이 풀어가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 가야 할 신비이기에, 우리 삶의 어느 한 부분도 하나님의 비밀한 뜻에 닿지 않는 곳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자체가 하나님의 풍성과 영광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우리 삶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입니다. 은혜로 우리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비밀한 뜻을 보게 되면, 사람으로 존재하는 이것 자체가 얼마나 큰 특권이요 축복인지를 누리게 됩니다. 어긋난 우리 삶의 실수와 실패조차도 하나님의 크신 손 안에 있기에, 분투하고 있는 사랑하는 후배의 아픔 또한 어느날 찬란하고 영롱하게 빛날 또 하나의 기적의 이야기로 빚어지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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