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롬 5:20),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롬 6:1)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죄를 덮습니다. 때론 이해가 되지 않아 우리는 그것을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라 부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값싼 은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든 죄를 무차별적으로 덮어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값싼 은혜의 주장 밑바닥에는 이런 말들이 깔려 있을 것입니다. “죄는 우리 모두에게 유전된 인자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인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이 말들은 진리의 일부이지만, 잘못 사용될 때는 모든 죄가 동일한 무게를 지닌 것처럼 평평하게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죄를 카펫 아래로 쓸어 넣는 것이 은혜는 아닙니다. 은혜는 기억을 지워 버리고 피해를 없던 일로 만드는 영적 마취제가 아닙니다. 누군가 정확히 말했듯이, 진실의 직면과 책임의 확인, 그리고 기나긴 회복의 여정을 건너뛴 채 서둘러 등장하는 은혜는 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값싼 은혜입니다. 진짜 은혜는 고통을 피해 가지 않고, 고통 곁에 머뭅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값비싼 은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본회퍼의 유명한 값(비)싼 은혜론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값싼 은혜란 우리가 스스로에게 베푸는 은혜입니다. 값싼 은혜란 회개 없는 용서의 설교이며, 교회의 훈련 없는 세례이고, 고백 없는 성찬입니다. 값싼 은혜란 제자도 없는 은혜요, 십자가 없는 은혜요, 살아 계시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없는 은혜입니다.” - 《나를 따르라》 중에서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는 실제지만, 신뢰는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 회개는 말 한마디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책임과 회복,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포함하는 긴 여정이라는 것을.
• 값비싼 은혜는 바로 그 길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 용서로 가는 길은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기도: 주님, 당신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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