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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기 짝이 없다

김용원 2026-02-06 0

지난 학기 어느 날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느라 집안이 한바탕 전쟁터 같았습니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에 찬 바람이 매서워 보여, 아이들 손이 시릴까 싶어 급하게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털장갑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급해서였을까요? 분명 한쪽은 찾았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나머지 한 짝을 도무지 찾지 못했습니다. 옷장 구석을 살피고 소파 밑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야속하게도 그 나머지 한 짝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등교 시간은 임박했고, 결국 아이는 장갑을 끼지 못한 채 빈손으로 집을 나서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장갑을 끼고가지 못해 현관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짝을 잃어 쓸모 없어진 왼쪽 장갑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문득 우리말의 ‘짝’이라는 단어가 제 마음 깊은 곳을 찔렀습니다.


우리말 표현 중에 “부족하기 짝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 말을 ‘한심하기 짝이 없다’거나 ‘기막히기 짝이 없다’는 식의 부정적인 형용사와 함께 사용하곤 합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감히 비교할 대상(짝)조차 없을 만큼 지나치다는 뜻입니다.


고요한 책상에 앉아 지난 한 주간의 제 삶을 가만히 복기해 보았습니다. 주일 강단에서 성도들을 향해 거룩과 헌신을 소리 높여 외쳤으나, 정작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는 세상의 흐름에 무뎌졌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겠 노라고 다짐했건만, 사소한 일에 자존심을 세우며 옹졸해졌던 제 마음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부끄러운 민낯들을 마주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 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목사구나!”


이러한 고백은, 처음엔 그저 저 자신의 연약함을 탓하는 자조적인 한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겪었던 그 장갑 소동과 겹쳐지며, ‘짝이 없다’라는 말이 단순한 신세 한탄을 넘어 우리 신앙의 가장 정직한 현주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짝’이란 무엇입니까? 아침에 제가 찾던 장갑도 짝이 있어야 아이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고, 신발도 짝이 맞아야 온전히 걸을 수 있으며, 젓가락도 두 짝이 함께 움직여야 음식을 집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혼자서는 온전한 기능을 할 수 없는 존재들은 반드시 ‘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내 믿음이 ‘부족하기 짝이 없다’는 고백은, 단순히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비하가 아닙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내 의(義)와 내 노력만으로는 도무지 완성될 수 없는, 철저히 ‘홀로 설 수 없는 존재’라는 뼈아픈 인정입니다. 나 스스로는 결코 온전한 ‘한 켤레’가 될 수 없는 외짝 장갑과 같아서,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 쳐도 기능할 수 없음을 하나님 앞에 시인하는 항복 선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비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짝이 없는’ 결핍의 자리야말로 주님이 찾아오시는 가장 거룩한 자리가 됩니다. 내가 스스로 온전하다고 믿는다면 주님이 들어오실 틈이 없습니다. 내가 부족하기 짝이 없기에, 나의 잃어버린 ‘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나의 ‘연약함’이라는 찌그러진 한 짝 옆에, 주님의 ‘강함’이라는 온전한 한 짝이 놓일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나의 ‘죄 됨’이라는 짝 옆에 십자가의 ‘보혈’이라는 짝이 맞춰질 때, 비로소 구원의 삶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혹시 지난 한 주간의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무너짐의 연속이었습니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실망스럽고, 남들과 비교하며 부족하기 짝이 없어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짝 되신 주님을 만날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인생을, ‘더할 나위 없는’ 주님의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짝 잃은 장갑처럼 쓸모없어 보이던 우리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셔서 따뜻한 한 켤레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빈 틈이 클수록, 그 사이를 메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더욱 선명합니다. 이번 한 주도 나의 부족함을 숨기지 말고, 주님의 넉넉함에 기대어 걸어가는 복된 동행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완벽한 ‘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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