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삶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늘 따라다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정착한 것처럼 보여도, 마음 한편에는 늘 물음표가 남아 있습니다. “이 길이 맞을까?”, “내일은 괜찮을까?”, “이 선택이 우리 가족에게 정말 옳은 결정이었을까?”라는 질문들입니다.
이민 초기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버겁습니다. 언어와 문화, 제도와 관계까지 하나하나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직장 문제, 자녀 교육, 건강과 노후에 대한 걱정은 늘 현재형입니다.
저 역시 다섯 아이의 손을 잡고 이 땅에 왔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이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잘 뿌리내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마음을 스칩니다. 이것은 특별히 더 불안해서라기보다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이민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게 되는 질문일 것입니다. 다섯 아이를 바라볼수록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최근에는 영주권을 둘러싼 환경이 점점 더 까다로워지면서, 이민자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제도는 자주 바뀌고, 기준은 높아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만큼 했으면 괜찮겠지”라는 기대보다,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라는 염려가 앞서게 됩니다. 내 노력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커질수록, 불안은 이민자의 일상이 됩니다.
그래서 이민자의 삶은 종종 ‘광야’에 비유됩니다.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애굽을 떠났지만 곧바로 안정된 삶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먹을 것과 내일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자리에서 그들은 매일 아침 만나를 주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루치만 주셨고, 내일을 위해 쌓아두려 하면 썩어버리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눈에 보이는 저장이 아니라, 매일 주어지는 일용할 은혜에 의지하며 살도록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는 불안한 장소였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배우는 자리였습니다.
이민자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일의 모든 답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내일의 지도를 다 알려주시기 보다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광야의 만나처럼, 그 은혜는 하루치씩 주어집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정말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날에도 우리는 하루를 건너왔습니다. 다섯 아이를 바라보며 막막했던 날들도, 생각보다 평안히 지나갔습니다. 불안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불안 속에서도 오늘을 살 만큼의 은혜가 늘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낯선 땅에서의 삶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어진 하루치 은혜를 붙들고 한 걸음씩 걸어갈 때, 광야 같던 길은 어느새 하나님과 동행한 길로 기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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