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운타운에서 개척 목회를 시작하며 전도할 때 한 할아버지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신실한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려고 애쓰셨습니다. 저희 부부를 한인 식당에서 자주 정성껏 대접하시며 교제할 때마다 저는 “죄 사함 받으셨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으십니까? 물어보면 “제가 어떻게 구원을 받아요. 저는 자격이 없어요.” 또 어떤 날은 “하나님 앞에 한 것이 없으니 죽어봐야 알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구원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선한 일을 하고 헌금도, 봉사도 많이 해야 구원을 얻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후 마침내 구원의 확신과 천국 소망을 품고 평안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을 믿는 자는 과거의 죄가 용서받았습니다.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기에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죄 문제를 해결해야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롬 3:25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세우시고 “이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간과”(헬라어 파레시스)는 죄를 가볍게 넘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실 때까지 오래 참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내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알고도 모른 척 하시며 이유도 묻지 않고 따지지 않으시며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7절은 “내가 그들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합니다. 이사야서 43장 25절과 44장 22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도말(삭제)하시고 구름과 안개가 사라짐 같이 사라지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죄가 일부 남아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처리되었다는 뜻입니다.
둘째, 우리는 현재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이미 의롭다고 선언된 존재입니다. 이것이 칭의(justification)입니다. 우리의 삶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정죄 받는 죄인이 아니라, 받아들여진 자녀로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5:24: 6:47). 영생은 미래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소유입니다.
셋째, 미래의 정죄 심판은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믿는 자는 마지막 날 심판대 앞에 서더라도 지옥 가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심판이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우리의 죄를 다 속죄하였다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선포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9장 28절은 그리스도께서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신다고 약속합니다.
성도는 이미 구원받고 용서받았어도 자범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가게 합니다. 죄용서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회개가 따라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징계가 있습니다.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히 12:8).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닙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으며 택하신 자들을 누가 고발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의롭다 하셨기에 누가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두려움에 묶인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자녀입니다. 구원 받은 신자는 과거의 죄 용서, 현재의 칭의, 미래의 심판을 받지 아니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영광스런 몸의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이 전인 구원입니다. 죄사함으로 인해 구원의 확신을 가진 신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신자는 오늘 현실에 두려움과 불안이 아니라 감사로, 의심이 아니라 소망으로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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