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모장크식 다민족 융합정책 본받아야
토론토 영 스트리트에 이란사람들이 30여 만명 미국의 대이란 군사행동 가능성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왜 한 국가의 지도자가 세계 질서를 개인적 결단처럼 다루는가. 트럼프는 히틀러식 극단적인 태도로 세계인을 괴롭히고 있다. 그는 관세와 군사적 위협을 협상 카드로 사용한다. 문제는 그 수단이 국제 규범과 인도적 고려를 무시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란에 대한 군사적 긴장 고조는 단순한 양국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중동의 불안정은 에너지 시장을 흔들고 동맹국까지 갈등의 소용돌이에 끌어들인다. 국제정치는 체스판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얽힌 현실이다. 쿠바에 대한 봉쇄는 인간성을 상실한 결과다. 식량과 의약품, 연료 접근이 제한될 때 타격을 받는 것은 권력 엘리트가 아니라 취약계층이다. 베네수엘라에 영토를 침범해 들어가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사실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그린란드 매입 발언, 동맹국을 상대로 한 관세 압박, 국경 장벽 강화와 대규모 이민자 추방 정책은 모두 트럼프의 동일한 세계관에서 나온다. 국가는 거래 대상이고 동맹은 비용 대비 효율로 평가되며 이민자는 경제적 부담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현대 국가는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 주권은 매매 대상이 아니며 국경은 협박의 도구가 아니다.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언급하는 식의 수사는 외교적 결례를 넘어 다자주의 질서를 경시하는 그의 포악하고 독재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트럼프는 미국의 성취를 자신의 업적처럼 포장하고, 반대자를 배제하며 이민자를 범죄와 동일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사회를 균열시킨다. 선량한 시민을 총으로 사살하는 이민단속국의 폭력에 항의하는 미국인들은 이미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이번 하원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은 참패할 것이 분명하다.
상원마저 민주당에 내주면 트럼프의 탄핵은 기정사실이다. 다민족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배제의 언어가 아니라 조정과 타협의 기술이다. 강경함이 리더십의 전부가 아니다. 국제정치에서 진정한 영향력은 동맹을 존중하고 규범을 지키며 신뢰를 축적하는 데서 나온다. 힘은 언제든 과시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는 더 이상 일극 체제가 아니다. 다극화된 질서 속에서 일방주의는 저항을 낳고 제재는 우회로를 만들며 고립은 새로운 연대를 촉진한다. 정치 지도자의 언어는 정책만큼 중요하다. 오만과 조롱, 과장된 자기 찬사는 일시적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감정이 아니라 이해관계와 신뢰로 움직인다.
한 순간도 듣고 싶지 않다는 시민의 피로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강한가를 겨루는 경쟁이 아니다. 누가 더 책임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미국이 스스로를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자임한다면, 그 기준은 자국민뿐 아니라 세계를 향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트럼프는 캐나다에서 배워야 한다. 캐나다의 다민족융합 모자이크식 복합다문화주의는 소수의 소리와 사회적 약자의 권익보호에 귀를 기울인다. 트럼프가 힘의 정치가 아니라 신뢰의 정치로 돌아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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