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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노의 숲에서 길어 올린 신의의 빛, 형광 다이아몬드

강영자 2026-02-26 0

한 시대의 길을 낸다는 것은 누군가의 헌신을 먹고 자라는 고귀한 연금술이다. 나는 오늘 캐나다의 영혼이라 불리는 게티노 공원 메켄지 킹 산책로를 걷는다. 사철 푸른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굽이진 오솔길. 발밑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친다. 길 끝 맥켄지 킹 수상의 영지가 보인다. 관광객들은 사진만 찍고 지나가지만, 나는 박물관 문턱을 넘어선다.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자연의 공기가 아니다. 역사의 폐부에서 새어 나오는 서늘하면서 뜨거운 숨결이다.


게티노 공원의 숲길을 걷는다. 사철 푸른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굽이진 오솔길 끝에, 맥켄지 킹 수상의 영지가 고요히 숨 쉬고 있다. 풍경에 취해 스쳐 가는 인파 사이로 박물관 문턱을 넘는 순간, 공기는 더 이상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폐부에서 밀려오는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숨결이다.


그곳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발자취를 발굴한다. 100여 년 전 이 숲의 평온을 뒤로하고 조선 어둠을 밝히러 떠난 선교사들의 뒷모습이다. 맥켄지 킹 후원 아래 제임스 게일은 황해도 소래에서 《사과지남》으로 한글 문법을 세웠고, 함흥의 맥클레이•그레이슨은 영생중학교로 교육 뼈대를 닦았다. 평양 대부흥의 맥컬리•화이트, 3•1운동 참상을 세계에 알린 아치발드 바커-그들은 조선 암흑 속에서 한국어 형광체를 깨워 인간 존엄의 빛을 점화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게티노 숲에서 시작된 인도주의는 어떻게 한반도 건국 의지로 만개했는가. 대답은 ‘신의(信義)의 교각’이다. 1945년 맥켄지 킹 회담에서 싹튼 신뢰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초기 국제 토대가 되었다. 숲의 고요함이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건국 대업으로 꽃핀 필연의 역사다.


1970년대 1세대 이민자들은 이 빛을 캐나다 혹한으로 옮겼다. 한글학교 아이들의 청색 파장(서툰 우리말), 코리아타운 어르신들의 녹색 파장(차례상 등불), K-팝 차세대의 무지개 파장(세계 공명)—이 굴절•반사 서사가 캐나다 한인 25만 명을 북미 칠흑을 찬란히 재 방출하는 ‘형광 다이아몬드 결정체’로 세웠다.


우리는 무엇을 발굴해야 하는가. 게티노 사료처럼 내면의 ‘문화적 원형’을 캐내야 한다. 세속 성공 아래 묻힌 한국어 숨결과 인도미터블한 인간 정신을 드러내야 한다. 

고독이라는 정(釘)을 세공 도구로 삼아야 한다. 이민 고독은 원석 불투명함을 깎는 예리한 날이다. 한(恨)을 희망으로 다듬을 때 탄소 덩어지가 보석이 된다.


당면 과제는 세대 전수다. 한글학교에 ‘게티노 뿌리’, 2세대에 ‘맥켄지 킹•이승만 신의’, 3세대에 ‘문화 형광체’를 심어야 한다.


미래 전수는 살아 있는 증언이다. 설날 등불 앞에서 아이들에게 말하라. “너의 청색•녹색•무지개 파장은 게티노 숲에서 왔다. 어둠 직시하고 고독으로 세공하라. 그러면 보석이 된다.”


3월 봄소식과 함께 설날 다짐을 꺼내본다. “나는 나의 역사를 발굴하고, 고독을 세공하여 스스로 빛나는 보석이 되겠다.”


게티노 숲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조선 등불•맥켄지 킹 선교•이승만 외교•우리의 인고가 제련된 영원한 별빛 발원지다. 이 길을 걷는 모든 이의 가슴에 그 빛이 닿기를 기원한다. 캐나다 겨울은 이제 우리 안의 빛으로 스스로 찬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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