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라(롬13:11)
이제야 새해를 맞이한 듯하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대개 태양력에 따른 정월 초하루는 어찌나 바쁘게 경황없이 지나가는지 정초를 지내고 나면 엄습하는 피로감에 눌려 명절 기분은 느껴 볼 새도 없었다고 한숨을 쉽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엔 아직 한 달 보름 정도의 동지섣달이 남아 있어 음력으로 새해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양력 정초에 다 하지 못한 인사치레나 조상님에 대한 차례, 어른을 찾아 인사를 드리는 설날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은 뒷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 여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정초에 세운 새해의 결심을 실행하는데, 벌써 조금씩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 음력 설날이 있는 것에 감사하기 한 이 없다고 합니다. 뒤늦게 새해 첫날의 기쁨을 즐기는 분들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은 듯 설날은 모든 사람의 기분을 새롭게 들뜨게 하는 즐거운 한때입니다. 설을 쇤다는 것은 확실히 온 가족이 모여 즐기는 민족 전통의 아름다운 풍습임을 실감합니다. “때”에 따른 여러 상념을 들추다가 문득 옛날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함께 초청받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며칠씩 진행되는 결혼식 축하연에서 가장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신학자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는 분들도 있으나 어찌 되었든 혼인 축하연에서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손님을 소홀하게 대접하는 오해를 불러 올 만큼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다급한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알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요2:4) 그러나 예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 개에 아귀까지 채운 물을 전부 포도주로 변환시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19:30)
예수님의 “때”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준행하고 이루신 그 순간에 마치신 것입니다.
나의 때는 언제일까? 상념에 잠깁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우리를 향하사 가르치시고 당부하신 말씀이 지금도 마음 판에서 쟁쟁히 울려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4:42, 25:13) 성도는 언제 주님이 임할는지, 또 주 앞에 불려 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때까지 우리 주의 자녀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기에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하십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또 그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2~3)고 하였습니다. 미덥지 않은 것에 몰입하여 신앙을 잃어가는 세태를 보며 다시 외워 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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