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미명, 기도의 자리를 향해 집을 나섰습니다. 주차된 차 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새벽 공기 대신 예상치 못한 진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습니다. 전날 밤 아이들을 위해 사 왔던 프라이드치킨의 잔향이었습니다. 가족들과 나누었던 온기는 사라졌지만, 그 고소한 기름 냄새만큼은 차 시트와 공기 속에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운전대를 잡으며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잠깐 머물다 간 음식도 이런 흔적을 남기는데, 내 마음이라는 공간에는 지금껏 무엇이 머물다 갔을까.’
우리의 인생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담고 비우는 저장소와 같습니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수많은 정보를 접하며, 각자의 가치관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으며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우리가 내뿜는 ‘영적 체취’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치킨을 실었던 차에서 치킨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처럼 마음속에 탐욕을 품으면 탐욕의 냄새가, 시기나 미움을 품으면 그에 걸맞은 악취가 인격의 결에 깊게 배어듭니다. 정작 본인은 그 냄새에 익숙해져 깨닫지 못할 때가 많지만, 우리를 마주하는 이들은 그 향취를 통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금세 알아차립니다. 우리가 무엇을 담고 사는지는 결국 말과 행동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로 증명됩니다.
세상의 가치들은 처음에는 늘 달콤하고 고소한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남들보다 앞서가는 성공과 안락함을 주는 물질의 향기는 매우 매혹적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영혼의 밀폐된 공간에 갇혀 신선한 은혜의 공급 없이 머물게 되면, 어느덧 부패한 악취로 변질되고 맙니다. 겉으로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내면이 세상의 욕심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그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결국 “나는 무엇을 담고 사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떤 향기로 주위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삶의 태도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배어 있는 냄새를 걷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환기’입니다. 그날 새벽, 저는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차창을 활짝 열어야 했습니다. 살을 에듯 차가운 새벽바람에 몸이 움츠러들고 손끝이 시려 왔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만 탁한 공기가 정화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에도 이와 같은 환기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언어로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과거를 자책하는 감정적 후회가 아닙니다. 성령의 조명하심 앞에 우리 안에 갇혀 부패해가는 낡은 생각들을 내보내기 위해 영혼의 창을 여는 은혜의 반응입니다. 익숙해진 세속의 안락함과 결별하는 과정은 겨울철 창문을 여는 것만큼이나 시리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정결함의 은혜 없이는 결코 내면의 악취를 몰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마음의 창을 열 때, 비로소 정체되어 있던 탐욕이 빠져나가고 그 빈자리에 성령의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일컬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향기는 인위적으로 꾸며내거나 감출 수 없는 생명의 흔적입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 창문은 혹시 세상의 욕심으로 굳게 닫혀 있지는 않습니까? 춥고 두렵더라도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보십시오. 회개라는 환기를 통해 내면을 정화하고, 다시금 맑고 선한 복음으로 그 공간을 채우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삶에서는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고결하고 따스한 그리스도의 계절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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