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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칼럼

기도하고 계십니까?

김윤규 2026-02-26 0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하던 시절 신학교 안에는 한인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새벽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유학을 온 목사님들이 자발적으로 새벽에 예배실에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학업의 부담 가운데에서도 목사님들은 서로 돌아가면서 새벽 설교로 섬기면서 기도의 자리를 묵묵히 지켰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신학교의 전통이 되어서 신학교 총장님이 토요 새벽예배에 함께 참석 하시고 설교를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4세기 소아시아 폰투스(Pontus: 현재 튀르키에의 북동부 지역) 지역에서 태어난 신학자 에바그리우스(Evagrius: A.D. 345-399)는 신학을 연구하는 것에 관하여 유명한 격언을 남겼습니다.


“만일 당신이 신학자라면 진실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진실하게 기도하면, 당신은 신학자입니다.”


이러한 명제는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만일 당신이 성도라면 진실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진실하게 기도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한국 교회는 새벽 기도회라는 특별한 기독교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어머님의 모태에서부터 새벽 기도회를 다녔습니다. 태어나서는 어머님의 등에 업혀 새벽 기도회에 참여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단순한 종교적인 의례가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기도가 삶이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있습니까?


한국 갤럽에서 조사한 [한국인의 종교 1984-2021 (1) 종교 현황] 여론 조사를 보면, 자신을 기독교인라고 밝힌 성도들 가운데에서 ‘하루 한번 이상 기도한다’라는 질문에 1984년에는 63%가 ‘그렇다’라고 응답했는데, 2021년에는 37%로 23%가 감소했습니다. 특별히 전체 기독교인 응답자 가운데에서 26%는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사실 코로나 19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였습니다. 한국 갤럽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하루 한번 이상 기도한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1984년 63%에서 1989년에는 68%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자의 비율은 완만한 하락세가 이어져 1997년 64%, 2004년 59%, 2014년 52%로 꾸준히 감소하였습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난 후, 2021년에는 37%로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성도들의 예배 참석률과도 상관 관계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주 1회 이상 예배 참석한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1984년 62%에서 2021년 57%로, 수치로 보면 소폭 감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1989년 73%, 1997년 72%, 2004년 71%였고, 2014년에는 80%로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19 이후 2021년에는 57%로 급격히 추락했습니다. 결국 1984년과 2021년의 수치가 비슷해 보이는 것은 우연한 착시일 뿐, 그 이면에는 30여 년에 걸쳐 쌓아 올린 교회 성장이 단 몇 년 만에 무너져 내린 뼈아픈 한국 교회의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에 관한 명확한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는 순례자의 길 위에서 인생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행위입니다(사 2:22). 따라서 기도는 인간의 약함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의 말씀을 보면, 어느 날 유다 왕 여호사밧은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과 마온 사람들(세일 산 사람)이 함께 거대한 연합군을 형성해서 유다를 침공해 온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전쟁의 위협 앞에서 여호사밧의 첫 반응은 ‘두려움’이었습니다(대하 20:3). 그러나 여호사밧은 두려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온 유다에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자신의 군사적 무력함뿐만 아니라 지혜와 전략의 부족함을 깨닫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장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 고백은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입니다.


여호사밧이 자신의 힘과 지혜가 완전히 바닥났음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시선을 두려움(fear)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었고,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찾는(seek the Lord) 행동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주목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레위 사람 야하시엘(Jahaziel)에게 임하여 응답하셨습니다. 야하시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유다 백성들과 여호사밧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라고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이 유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대하 20:15). 하나님께서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것뿐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내신 복병으로 인해 적군들은 서로를 향해 칼을 들었고, 스스로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유다 군대는 단 한 번의 칼도 사용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현장을 두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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