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성이 여인처럼 밤새도록 서러워 통곡하니, 뺨에 눈물 마를 날 없습니다.” (애가1:2)
예레미야애가는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에 의해 예루살렘이 무너진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울음이 응축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예언자는 유다를 한 여인, 밤마다 흐느끼는 과부의 모습으로 그려 냅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성읍은 텅 비었고, 노래와 웃음이 넘치던 절기들은 사라졌습니다. 그녀의 재산은 약탈당했고, 백성은 흩어졌으며, 자녀들은 포로가 되어 학대를 당했습니다. 화려했던 도성은 이제 기억 속의 이야기로만 남아 있습니다.
이 애가는 설명이 아니라 탄식입니다. 논증이 아니라 울부짖음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차분히 해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너무 아프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고통을 덮어두거나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표현하는 일은 치유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말로 고통을 직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억눌렸던 감정에서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고통은 우리에게서 선택권과 주도권을 빼앗아 가지만, 트라우마의 경험에 이름을 붙이고 목소리를 부여하는 순간, 우리는 잃어버린 자율성을 조금씩 회복합니다. 애통은 연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 있음을 증언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는 “내 아픔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이 엉키더라도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분노와 좌절, 이해되지 않는 질문들까지도 그분 앞에 쏟아놓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하나님께서 이런 탄식을 금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속으로 함께 들어오셔서, 침묵으로든 눈물로든 우리 곁에 서 계십니다.
우리는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성읍이 무너지고 노래가 사라져도,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폐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애통의 자리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들으시고, 여전히 함께하십니다. 믿음이란 때로 찬송이 아니라 울음으로 고백 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고통을 숨기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당신 앞에서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우리의 눈물과 탄식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당신의 임재를 신뢰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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